학부시절, 이러저런 관계들에 상처를 입고 안으로 움츠러들었던 시절에

마침 『개미』라는 소설을 읽고 개미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과학적인 기반을 가진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페로몬이라는 물질을 통한 직접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라면

적어도 언어라는 의사소통 도구의 한계로 인하여 인간들이 겪어야만 하는

오해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는 '진정한 이해'라는 유토피아를 믿고 있었고

뱉어버린 말들 또는 미처 꺼내지 못한 말들로

멀어져간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에 가슴 아파 했었다.

나이 30을 넘어서면서 어느 순간

언어라는 불투명한 매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월의 때가 묻어서일까, 나에게 페로몬과 같은 의사소통방식이 주어진다고 해도

별로 이용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상대방의 내면을 날 것으로 접할 용기도 없다고나 할까.

사실 20대 초반의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인데 자각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불투명한 언어의 도움으로 비틀리고 뒤틀리었을지언정

어쨌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불투명한 그 두께만큼 '진정한 이해'라는 믿음 속에

'동상이몽'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한다.

인간사를 너무 회의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누군가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동상이몽'이면 어떤가.

같이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오히려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더 깊어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까지 나는 '찰나적 순간'에 대한 믿음까지 포기한

회의론자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이브의 시간'의 개장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추석날 학교는 너무 고즈넉하고 그리고 .... 지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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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양 2009/10/03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만에 글을 썼는데 전체 블로그 목차 제목의 오타가 수정되지 않아요. 왜 여기서는 수정이 되는데, 이브의 시간에서는 자동적으로 수정이 되지 않는 것인가요? 괜히 바보같아 보이잖아요.

  2. Arcade 2009/10/04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괜찮은데요?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실시간 연동시스템이 아니라서요..

  3. Arcade 2009/10/04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르몬과 언어라.. 재밌네요. 예전에 길을 달리는 자동차들에 표정이 있다면 도로가 싸움판이 될거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