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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부터 작업을 했던 일기자료가 최근에 발간이 되어서 광고도 할 겸 신문에 쓴 보도자료를 올립니다. 책 제목은 『평택 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Ⅰ - 평택 대곡일기(1959-1973) -』입니다. 지역문화연구소에서 원고 집필을 했으며, 발간은 경기문화재단에서 했습니다. 보도 자료는 말초신경 자극적이어한다는 말을 듣고 쓴 글이라 다분히 오버하는 부분이 있으나, 그렇게 아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구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사정을 보면서 제가 마련해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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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생활사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일기자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일기는 사람들이 살아 숨을 쉬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으로 독자를 이끌고 가서 저자가 살았던 지역과 시대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에 사는 신권식 선생(1929년생)이 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써온 『대곡일기』는 하루 일과의 착실한 기록이 생활사 자료로서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령 신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신권식 선생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 80세를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일기쓰기를 거르지 않고 있다. “전 해 일기를 보고 그 해 농사 일정을 미리 짐작하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신권식 선생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일차적인 목적은 농사 및 가계 운영을 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식전에 일어나 ~를 하고 식후에 ~를 하고 (…) 저녁을 먹고 ~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로 끝나는 하루 일과의 꼼꼼한 기록 속에는 농사일기나 가계부를 넘어서는 농촌 생활의 다양한 면모가 담겨 있다. 집안 이야기며, 마을 및 친족 행사나 사람들 이야기, 심지어는 중앙의 정치 변화 및 이에 대한 자신의 평가까지 적고 있는 이 일기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한 농촌 마을의 총체적인 생활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사단법인 지역문화연구소와 신권식 선생과의 첫 만남은 2006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평택지역 근현대사 사료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신권식 선생의 호의와 용단으로 1959년부터 2005년까지 총 44권의 일기(1966년, 1969년, 1970년 일기 소재 파악 못함)를 복사할 수 있었다. 이후 지역문화연구소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재연구원 전통문화실의 지원을 받아 1959~73년도까지 총 12년 치의 일기를 입력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신권식 선생과 의논하여 이 일기를 『대곡일기』라 이름 붙이게 되었다. 대곡은 신권식 선생이 사시는 고잔리의 마을 이름이면서 신 선생의 호이기도 하다.

이 작업에 참여한 연구자는 총 11명으로, 일기 입력이 끝난 후 토론을 거쳐 <날씨와 농사>, <간척과 토지지용>, <농사와 노동력>, <여성 노동>, <농한기 부업>, <장시 출입>, <금융거래와 물가>, <축산>, <식생활>, <의생활>, <주생활>, <가정생활 및 친족생활>, <마을생활>, <정치사회 활동과 인식>,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직업들>, <평생의례>, <세시와 놀이>, <민간의료>, <민간신앙>, <구전전승> 등 총 20개의 분야로 나누어서 일기를 분석하였다. 이와 같은 분야들은 일기에 나타난 다양한 생활상을 담아내기 위해 연구자들이 고안한 것이며, 기존 민속조사 보고서에서 다루어지는 항목뿐만 아니라 1960년대 농촌의 변화된 생활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 작업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단체로, 혹은 개별적으로 신 선생님과 수차례 인터뷰를 가져 일기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평택 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Ⅰ - 평택 대곡일기(1959-1973) -』는 이 작업의 결과물로서, 분석 보고서와 분야별 일기로 구성되어있다. 20개 분야는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사회생활>, <고잔리민속>으로 크게 나누어서 편재하였다.

『대곡일기』를 읽는 독자는 민속학 전반에 걸친 자료와 농업사, 경제사, 지역사, 생활사, 생애사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농업에 기반이 되는 토지 이용의 양상, 농부의 일 년 노동 주기, 농업 노동 관행의 변화, 농촌에서 볼 수 있는 금전 거래의 양상 및 물가 변동, 부부 사이의 관계를 포함해서 가족 및 친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관혼상제례 때 사람들을 대접하는 방식이나 부조 형태, 마을 주민들의 부역 노동 형태, 이북에서 내려와 정착한 월남민들과 원주민들과의 관계, 국가의 농촌 정책 및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는 과정, 지방 사회에서 선거전이 전개되는 양상,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세시풍속이 차지하는 의미의 변화 등등 이 일기에서 읽어낼 수 있는 농촌 생활사 자료는 무궁무진하다.

<경제생활>에서 예를 들어 본다면, 독자는 언제 비가 내리느냐에 따라서 그 비가 ‘적우(適雨)’, ‘감우(甘雨)’도 될 수 있으며, ‘객수(客水)’나 ‘악수(惡水)’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잔리 일대의 농지는 예로부터 ‘원안(堰-)’이라고 불리는 간척지에 주로 분포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원안에서 농사를 지을 때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농부들이 품을 교환하거나 고용할 때 노동 시간을 재는 단위로 ‘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농번기에 몇 달 간 고용하는 일꾼을 가리켜 ‘달몸’이라고 불렀다는 것, 고잔리에서는 어디에서 일꾼을 구해올 수 있었으며, 일꾼들의 품값은 얼마였는지 등등에 대한 정보도 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밖에도 농한기 때 농부들이 새끼 꼬기 등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새끼의 종류가 ‘가는 새끼’, ‘꾸밀 새끼’, ‘매끼’, ‘삼태용 새끼’, ‘왕울기’, ‘주대 드릴 새끼’ ‘쇠연장 드릴 새끼’ 등으로 얼마나 다양한지, 하루에 한 명의 사람이 꼴 수 있는 새끼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도 알 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빠짐없이 날마다 기록되었다는 점, 5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록된 시계열적 자료라는 점에서, 현지조사나 구술조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대곡일기』를 읽다보면 일기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고잔리는 시공간의 맥락이 사상된 화석화된 마을이 아니라 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임을 깨닫게 된다. 본 보고서에서 다루고 있는 1959~73년도 일기에는 1960년대 농촌 마을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구체적인 현장감이야말로 이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도 요동하는 1960, 70년대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대곡일기』와 같은 일기자료가 계속적으로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뜻 없는 歲月이 如流하는 동안 우리의 後面에 남는 것은 歷史의 記錄이다(1962년 1 월 1일).”

신권식 선생이 50여 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써 온 것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62년 신년소감에서 밝히고 있듯이 『대곡일기』는 신권식 선생의 역사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평범한 한 농부로 보일 수도 있는 신권식 선생이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의 이 철저한 기록정신과 역사의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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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jinseo 2007/06/17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을 했군요. 여러 연구자들에게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될 거고, 이 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준거점이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라면, 단순 책자의 형태로만 발간될 게 아니라 디지털화를 해서 검색과 색인이 자유로운 형태로도 나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