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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30 낙장불입, 돼지의 전당 (9)

저는 인류학과에서 역사인류학을 전공하였고, 이 블로그를 처음에 함께 만든 사람들도 애초에는 그곳에서의 만난 이들입니다. 지금도 대충 그 연장에서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의 내용은 주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한국의 민속현상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학문범주로 분류하면 민속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제목에 <민속연구>라는 타이틀이 붙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입니다. 그러나 ‘민속을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이 블로그를 만든 것은 아니고, ‘민속을 연구하는 부산물로’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 점을 납득시키려면 <낙장불입>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그걸 얘기하도록 하지요.


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간혹 시간강의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저의 경우 개인적인 사정으로 요즘 쉬고 있습니다만). 저의 경우 전공이 그렇다보니 ‘문화인류학 개론’에 해당하는 수업을 많이 맡게 되는데요. 수업 첫 시간에 ‘문화인류학이 뭐냐’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돼지 이야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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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가 문화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현지조사라는 것을 하다보면 조사지의 주민들이 벌이는 축제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간혹 있습니다. 그리고 축제라는 게 백이면 백, 희생으로 바쳐지는 제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소라든가, 돼지, 주로 그런 거지요. 아무래도 돼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조상이라든가 신에게 바쳐지는 희생인데요. 결국은 다 산 사람이 먹자고 하는 거고, 산 사람 입장에서는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단백질 보충의 기회이니, 신이 절로 납니다. 누가 뭐라고 안 해도 조상과 신에 대한 고마움에 사무칠 판이고요. 분위기 좋습니다. 한쪽에서는 돼지 잡는다고 소란이고, 다른 쪽에서는 끝나고 먹을 돼지 얘기로 질펀하고, 돼지는 돼지대로 살겠다고 난리입니다. 아비규환인데, 그러나 돼지의 소원만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류학자는 인류학자대로 난리입니다. 축제라는 게 대개 일 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 열리는 것이고, 인류학자 입장에서는 조사기간 중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기회이므로, 때는 이때다, 인류학자로서는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한 판입니다.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다 머리에 집어넣겠다, 그런 심정으로 임하지만 실은 불가능하고, 일단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한 통, 두 통, 필름이 아까울 상황이 아니고요. 그렇게 찍노라면 왜, 뭘 찍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희생제물을 도축하는 장면 정도가 되면 뭐 정신이 없습니다. 도축에 저항하며 악을 쓰는 돼지에, 그 돼지를 잡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에, 그걸 보고 농을 하거나 핀잔을 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사람에, 일대가 흥분의 도가니입니다. 필름 세 통, 네 통이 금방이지요.


이윽고 돼지는 멱이 따여서, 아니면 도끼나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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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로 정수리를 찍혀서,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멱 따인 자리에서 더운 김과 함께 피가 솟구치고, 처음에 울부짖는 소리, 몸부림과 함께 춤을 추던 핏발은 돼지의 마지막 숨과 함께 잦아듭니다. 축제음식에 보태기 위해 돼지 피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피가 튀고, 인류학자에게도 피가 튀고, 그래도 이미 피를 본 이상 카메라는 쉴 틈이 없습니다. 다섯 통, 여섯 통, 도축한 돼지는 통째 쓰기도 하고 각을 뜨기도 하지요. 머리 떼고, 앞다리 뒷다리 떼고, 내장 떼고, 갈비 떼고, 삼겹살 떼고, 삶거나, 굽거나, 정성스럽게 담는 데까지 일곱 통, 제물을 올리는 데 여덟 통,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되면 아홉 통, 벌써 열 통은 우습네요.


그런데 이튿날, 흡족한 마음으로 사진을 인화한 인류학자의 앨범에는 돼지 사진이 태반입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돼지, 끝내 결박당하는 돼지, 멱을 따이는 돼지, 피를 흘리며 마지막 숨을 토하는 돼지, 털이 그슬려지는 돼지, 각이 떠지는 돼지, 톱질이 시작된 돼지머리, 완전히 잘라진 돼지머리, 돼지 염통, 돼지 창자, 돼지족, 그것도 앞다리 클로즈업, 뒷다리 원경 등등. 그러나 인류학자가 동물학자가 아니니 만큼, 이런 돼지사진 풀 세트는 인류학자의 갤러리로서는 낙제점입니다.


인류학자라면 돼지보다는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멱이 따이는 돼지가 아니라 돼지 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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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따는 사람, 각이 떠진 돼지가 돼지 각을 뜨는 사람, 제물로 올려진 돼지가 아니라 돼지 제물을 올리는 사람, 돼지의 부위별 생김새가 아니라 그걸 먹으려고 어슬렁거리는 사람, 내 차례가 언제 오나, 10등보다 아래 순위면 가만 안 둔다며 뒷짐 지고 기다리는 사람, 돼지축제는 미신이라고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사람, 그 아빠가 무섭지만 돼지고기의 유혹은 떨치기 어려운 개구쟁이들, 무엇보다도 이 모든 일에 돈을 대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흡족해하는 배후의 인물(들), 그 사람들 전체를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거구요. 그런 의미에서 돼지사진 풀세트는 헛고생이고, 이를테면 ‘낙장’이지요.


그런데,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돼지 사진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건가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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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학자로서의 연구작업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논문에 써먹을 수가 없었다고 해서, 그 사진들이 진정 모두 헛수고였단 말입니까? 이 블로그는 돼지 사진에는 돼지 사진의 자리가 있고, 그 갈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공식적인 학술논문에 들어갈 자리는 없지만, 처음부터 그걸 밝히는 게 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돼지의 최후를 기록하는 것, 축제에 임한 모든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그 충만한 에너지의 진정하고 유일무이한 근원인 돼지 자체를 경배하는 것, “그런 건 논문에 써먹을 수 없어.”라는 핀잔에 주눅 들지 않고 “그래서 뭐?”라고 도리어 당당하게 반문하면서 돼지들을 위한 전당을 건설하는 것, 이것을 <낙장불입>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때 ‘불입’이란 ‘못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젠장(이라고 앞에 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안 들어간다’라는 입장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의 대문에 내건 돼지 사진은 그런 입장이랄지, 태도랄지, 그런 걸 표명하는 슬로건이요, 깃발입니다. 게다가 돼지 굽는 장면이라는 건 왠지 정감이 있고 좋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