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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신변잡기 2007/06/27 13:53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강연안의 마을을 훑으며, 노농(老農)을 찾아 배움을 얻고, 한 마을을 떠날 때마다 한 편씩 시를 쓰리라. 마침 고은이 만인보(萬人譜)를 쓰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으로 나의 만촌보(萬村譜)를 삼을 요량이었다.


물론 여러 사정이 있었다. 생활, 작업, 이론, 감상(感傷), 스승과 선학들, 동료와 가족들. 모든 것이 나를 압도하며, 둘러쳐져 벽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크고 단단하며 육중했던 벽은, 듣는 것만으로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노농들의 이야기 자체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자재로 몸을 놀릴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압도했던 것들의 유허(遺墟)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하게 했던 것들, 나를 압도했던 벽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것들에 의지하여 오늘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