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답 댓글을 적고, 실은 '지배' '지배적' '지배한다' 등의 어휘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배'는 아마 영어로는 도미네이트 혹은 룰인 듯 한데, 그 단아 자체의 뜻으로 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에서의 용례로 보나, 이게 이를테면 그저 '우세를 보이다'는 의미 정도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그게 아니라 직접적인 지휘명령적인 성격을 지닌 상당히 강한 주종관계에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릭 울프의 <농민>(박현수 역, 청년사, 1978)을 읽던 중, 농민사회와 관련하여, 토지지배권의 유형을 나누어 설명한 내용이 있어 자료 삼아 올립니다. 마침 의례의 기능을 지적한 부분이 있어, 라구르 님이 쓰신 연구사 리뷰하고도 맥락이 닿는 점이 있더군요.

물론 울프의 설명은 농민사회 내의 토지지배권과 관련한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고, 저희들이 논의해야 할 주제는 이보다 광범위하거나 또는 아주 다른 맥락 위에 놓인 지배 현상에 관한 것이어야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도 뭔가 다음의 토론을 이어가기 위해 참고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에 꺾은 괄호 안에 들어가있는 것은 페이지 숫자(그 숫자에 해당하는 페이지가 그 꺾은 괄호 이후부터 시작한다는 뜻으로)를 뜻합니다. 끄트머리에 가까운 데에 나오는 농민사회의 구기술과 신기술이라는 표현은, 울프가 사용하는 바에 따르면, 신기술은 노포크식 윤작의 발달, 종자개량, 세계 각처로부터의 새로운 작물의 유입, 새로운 기계(주로 축력)의 도입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고, 구기술은 그 전 단계의 그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울프는 여기에서 언급한 세 가지 토지재배권의 형태 외에 마지막으로 행정적 지배권이라는 것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콜호즈와 소포즈, 중국의 인민공사 같은 것인데요. 여기까지 하면, 대충 예전의 고등학교 지리나 세계사, 대학의 교양강의 등에서 들었던 상식들이 살아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 치기에는 손이 아프기도 하고 그런다고 해도 어차피 다 읽으실 분도 없으실 듯 하여 내용은 임의로 생략하였습니다.

**********************

 

[91]이러한 예들(18세기 인도의 촌락과 중세 유럽의 장원―인용자)을 보건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농민들이 사용하는 토지에 대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은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인데, 지배권이란 어떤 토지를 이용하는데 대한 궁극적인 소유권이나 관리권을 뜻한다. 우리네 사회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토지를 사유하여 이를 마음대로 팔거나 처분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여러 가지 지배권 형태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전통적으로 농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쳐온 지배권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세습적 지배권과 봉록적 지배권과 상업적 지배권이 그것이다. 세습적 지배권은 흔히 봉건적 지배권이라고도 불렸는데 봉건적이라는 말에는 매우 복잡한 의미들이 얽혀있어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습적 토지지배권이 행사되는 경우 토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치할 권력을 장악하는 사람은 어떤 특정 친족집단이나 가계에 태어난 덕분에 지배권을 상속받은 영주이며, 이러한 통치권[92]에는 토지를 점유한 주민들로부터 토지사용료를 거둘 권리가 포함된다. 이런 지배권은 영주네 가계를 통하여 세습적으로 상속된다. 그러한 권리는 피라밋식으로 구성되어, 높은 영주가 낮은 영주를 지배할 세습적인 권리를 가지며 낮은 영주는 땅을 일구는 농민들에 대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는 수가 있다. 농민은 언제나 이러한 피라밋과 같은 위계조직의 밑바닥에서 노동력이나 물건, 또는 돈으로 잉여자금을 바쳐서 그러한 조직을 지탱한다.

봉록적 지배권은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심부름꾼이라는 자격으로 농민들로부터 토지사용료를 거두는 관리들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세습적 지배권과 다[93]르다. 그러므로 이런 지배권은 가계의 지배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지배권은 어떤 특정한 관리에게 일한 댓가로서 수입―봉록―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막스 베버가 이런 뜻으로 사용한 ‘봉록’이라는 말은 원래 유럽의 관리들에게 급여하던 봉급 또는 ‘생계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급료 형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 예컨대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오스만 제국, 인도의 무갈 제국, 그리고 중국의 역대왕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제국들은 정치조직에 의하여 토지와 토지사용료에 대한 상속적인 권리 주장을 막아내는 데 힘썼다. 그 대신에 절대적인 전제군주의 막강한 지배권을 내세워, 지배권을 주장하는 모든 하부세력을 깔아뭉갰다. 그래서 하부 지배권은 어느 것이나 절대자의 심부름꾼 자격을 가진 관리들에게 부여되었다.

봉록적 지배권의 또 하나의 중요 형태에서는 토지가 아니라 ―주권자로서의― 국가가 농민층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수입을 문제로 한다. 이러한 형태의 봉록적 지배권 체제 하에서는, 국가 관리에게는 국고로 돌아갈 조세에 덧붙여 자기의 몫을 거두고 이를 자기 뜻대로 사용할 권한이 부여된다. 이런 방법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른바 세금 농사꾼(tax farmer)에게 일정한 지역에서 세금이라는 형태의 조세를 거둘 권리를 하청주어, 세금 농사꾼이 국가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고 그 수입 중의 한 몫을 차지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둘째는 우선 국가의 수입을 한 군데 모은 다음에 관리들에게 그들이 일한 대가로 봉급을 주는 방법이다. 세금 농사라는 하청방법은 중동 지역과 인도의 무갈 왕조의 봉록적 지배권의 기본적 형태였다. [94]봉급 지급이라는 방법은 보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룩했던 중국에서 관례적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세금 농사꾼이건 봉급 받는 관리건 간에 거두어들인 세금을 상부에는 바치지 않고 자기 밑천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막스 베버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좋던 때라 할지라도 중앙에 도달하는 것은 총수입의 40%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그렇다고는 하지만 지배권 장악자들이 강한 자율권을 가지는 세습적 지배권에 비하여 봉록적인 지배권은 확실히 중앙집권의 정도가 훨씬 높고 훨씬 폭넓었다.

세습적 지배권과 봉록적 지배권의 공통적인 양상은 그런 지배권 행사들이 우리가 말한 바 있는 의례에 얽혀있었던 정도에 있다. 의례적인 성격은 특히 세습적 지배권의 경우에 뚜렷하다. 그런 데서는 영주가 예속적인 농민들과 직접적으로 개인적인 관계나, 아니면 적어도 개인화된 관계를 맺는 게 보통이었다. 농민들이 이런 영주들에게 해주는 일에는 의례적인 측면이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영주와 농민과의 관계가 흔히 일종의 계약으로 이루어져서, 농민들이 바치는 것을 받는 대가로 영주는 그들을 보호하고 안심하고 땅을 일굴 수 있게 한 교환관계였다는 사실이다. 13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이런 계약관계가 일종의 협약이라는 말로 상정되었다.…농민들이 영[95]주에게 해주는 일은 대개 주기적인 의례행사들과 얽혀있었다. 예컨대 성탄절에는 맥주나 닭을 바치고 부활절에는 계란을 바치는 따위이다. 이에 대하여 영주는 주민들에 성탄절이나 부활절 축제를 열어주고, 혼인을 축하하기 위하여 잔체를 베풀어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봉록적인 지배권이 보편화된 곳에서는 의례를 통하여 농민과 궁극적 지배자이자 지상의 보호자로서의 최고 군주 사이의 관계를 은폐시키려 하였다. 지배자를 보기를 하늘의 아들이나 지상의 초자연적 세력의 대리인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배자는 그가 군림한 나라의 질서를 지탱시킴으로써 우주의 섭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런가하면 제왕의 의례적인 영광은 그를 위해 일하고 그의 명령에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졌다. 이리하여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국가 관리는 농민들이 보기에 단지 행정 기술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儀式的)인 존재이기도 했다. 페이 사오퉁은 중국에서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거나, 메뚜기떼가 농토를 휩쓸면 어떻게 대처하는 지 설명해주고 있다.… [96]이러한 의례는 여러 가지 구실을 할 수가 있다. 호만스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런 의례는 의식적(儀式的)인 방법으로 농민을 보상해줌으로써 불균등한 농민과 집권자 사이의 균형을 맞춰준다. 아울러 이는 집권자의 정체를 의례적인 가치로 가려줌으로써 피지배자들의 잠재적인 반대주장에 대하여 지배자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다.

토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배권의 세 번째 형태는 상업적 지배권이다. 여기서는 토지가 지주의 개인적인 소유물이어서 주인이 이익을 얻기 위해 사고팔거나, 이용할 물체로 간주한다.…상업적인 지배권도 다른 지배권들처럼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지배권들처럼 토지를 이용하는 대가로서 돈을 거둘 권리를 주장한다. 이러한 것을 흔히 지대(地代)라고 부른다. 토지와 토지로부터 거둘 수 있는 수입을 마치 돈처럼 취급한다는 점에서 상업적 지배권은 앞에서 살핀 바 있는 지배권들[97]과 다르다.…

이러한 토지에 대한 세 가지 형태의 지배권―세습적, 봉록적, 상업적―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어느 사회에서건 이러한 지배권들은 서로 공존한다. 어떤 특정한 사회체계의 조직적 측면을 결정짓는 것은 오히려 이런 형태의 지배권들이 어떻게 조합되거나 ‘혼합’되고, 각 형태들이 상대적으로 어떠한 비중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다.…[99]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배권들이 단지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러한 지배권을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가 하는 것이다.…확장 도상의 북서 유럽에서는 상업적 지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본을 투자하여 구기술의 생태형을 변화시키는 데 노력함으로써 생산 상의 모험을 감행한 셈이었다. 반면에 전통적인 동양이라든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구기술에 의존하는 생산기반을 보존하[100]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의 위험을 언제까지 미루었으며 조세징수수단만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체제를 지대자본주의라고 한다{울프 1978: 91-100).

 

전체적으로 라구르님이 블로그를 개설하셔서 먼저 글을 쓰시고, 여기에 대해 저희들이 댓글을 다는 식으로 진행되어야 전체적으로 글들이 제 위치를 찾을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제가 글을 쓰고 라구르님을 포함하여 여러 분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군요. 뭐 이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게 딱히 부담스러울 것은 없습니다만, 하여 간에 이 글 역시 그러한 기형적인 형식에 따라 또 제가 새로운 글을 쓰는 형식으로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당사자들이야 문제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겠습니다만, 혹시 보시는 분들이 논의를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애초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계기는 ‘시대구분’ 사이의 칸에 대한 라구르님의 문제제기(이 블로그의 <쿠이이이즈~!! 계급, 신분, 문화, 특권 + 국가, 직역>이라는 글에 달린 마지막 댓글)였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바로 뭔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제가 생각해왔던 어떤 점과 관련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지난 번 글에서는 쓰다 보니 흐름을 놓쳐서 이에 대한 언급으로까지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결국 ‘시대의 구분’이라는 것은 ‘양식의 차이’를 가지고 설명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라구르님이 쓰신 글에서 일부를 차용하면, “이 시대와 저 시대는 칸이 쳐져 있어서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넘어가면 양식이라는 것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고나 행동, 표현의 양식이 바뀌는 것을 두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고 ‘변화’를 운운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는데요. 물론, 그 전에, ‘그 양식으로 규정된 것 외에 다른 일은 나타나지 않으며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더라도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류학 개론에서 말하는 심리의 제일성이라는 것을 조금 더 확장 또는 변용(이게 애매하다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패러디’)해서 ‘계산능력의 제일성’이라는 전제를 두고(이것은 Islands of History에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차용하여 하와인의 무차별적인 실용주의를 ‘야생의 계산’이라고 불렀던 마샬 살린스의 어휘를 다시 차용한 것인데요), 그 계산에 사용되는, 그리고 그 계산에 따른 행위에 사용되는 유ㆍ무형의(혹은 물질적ㆍ관념적인) 도구들의 양식적인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는 인간관ㆍ사회관을 구현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경우 라구르님이 댓글에서 표적으로 삼았던 사고방식들 중 ‘양식으로 규정된 것 외에 다른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반대를, ‘시공간들 사이의 칸을 넘어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더라도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반대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제한적인 반대’ 즉 ‘제한적인 찬성’을 하게 된다는 것은, 역시 그것이 ‘양식’ 자체의 맥락과 어느 정도로 관련되어 있는 문제인가에 따라서 실제 개별 사실이나 해석에 대해 반대할 수도, 찬성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양식 내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일수록 그 반대의 정도는 강해질 것이고, 계산 내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일수록 그 찬성의 정도는 강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역사적 사상(事象)들에 대한 설명 내지 평가들은 이 사이에서 적절한 위치를 잡게 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단순하고 회피적인 절충론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양식의 차이’라는 단일한 극점만을 설정하고 각종의 사상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양식’ 외에 ‘계산(혹은 심리)’이라는 다른 극을 설정하고 이 설정을 통해서 새롭게 사상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자위를 해봅니다. 


이 지점이 역사학과 민속학(그리고 인류학)의 경계점이라고 보시는 견해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대구분을 그 본령이자 궁극적인 지향으로 삼는 학문이고, 민속학은 그 본령이나 궁극적인 지향에 대한 인식이 모호한 상태에서 흔히 이를 넘나드는 일을 일삼아왔기 때문입니다. 민속학사(그리고 인류학사)에는 이로 인한 뻘짓들의 흔적이 마치 수십, 수백 구의 시체를 절단 낸 토막살인현장의 혈흔처럼 어지럽게 널리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그 분간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난만한 혈흔들로 인해 모종의 성취의 가능성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으로 님의 논평과 관련해서는 “관습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제된 시공간적 구분을 넘어”라는 문장이 제가 맥락과 계열의 개념적인 차이를 설정하기 위해 집어넣은 것인데, 역시 모호한 표현인데다가 설득력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집으로 님의 논평이 적절했고, 저의 논지의 약한 고리를 날카롭게 짚어내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제가 생각하기에 ‘맥락’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의미들의 내적 일관성이 해석대상에 실재하거나 적어도 해석자에 의해 재구성되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게 되는(혹은 성립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식’도 맥락이 될 수 있겠지요. 물론 다른 것들이 맥락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은 계열과의 대비를 위한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맥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 개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려고 할 때 그렇게 사용된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본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실은 그러한 의미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일회적이고 돌발적이며 뜬금없기 마련인 각종의 사상(事象)―저는 사물과 현상, 사건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이 말이 적합한 것 같아 이 ‘사상’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이건 일본식 한자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들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미들의 체계 혹은 구조’라는 차원에서의 내적 일관성이 있다는 전제가 불가결할 것입니다. ‘하나의 사회’에 ‘하나’가 아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입론을 하는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그러한 입론 역시 ‘그보다 작은 사회’에서는 그 고유한 하나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전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전제되어야 ‘그보다 큰 사회’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입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며, 그건 뒤집어 말하면 ‘그 작은 사회’에는 ‘일관된, 공유되고 학습된 하나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한 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연구분석은 ‘사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맥락화’가 중요한 것이고, 그 맥락을 잡아내지 못하거나 잘못 잡아내면 뻘짓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며, 하여튼 맥락에 관한 우리의 모든 대화가 이러한 정의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계열’은 이러한 맥락의 존재, 그러니까 ‘의미들의 체계 혹은 구조’라는 뜻에서의 ‘내적 일관성’ 혹은 ‘학습되고 공유된 성격’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 그러나 역시 맥락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역사적 사상들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련의 연쇄관계 혹은 인덱스들의 반복적 출현이라는 거죠.


둘째, 그런 의미에서 맥락과 계열은 절대적인 구분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식의 성격 상, 그리고 일단 지식과 해석을 성립 가능케 하는 기존의 맥락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계열들이 끄집어내져서 새로운 해석과 지식이 성립하면,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일수록 그 계열들은 이제 새로운 맥락으로 바뀌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맥락과 계열은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라, 지식과 해석, 설명과 이해라는 세계에 존재하는 임의적이고 실천적인 구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가령 마을의 역사는 맥락이고 세계체제의 역사는 계열인 것이 아니라, 또 공시적 연구는 맥락적 지식을 정리한 것이고 통시적 연구는 계열적 지식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마을의 역사가 기존의 지식의 맥락인 상황에서 세계체제의 역사가 지식의 계열이 되었다면, 전제가 반대인 경우(즉 세계체제의 역사가 맥락으로 기능하고 있을 경우) 마을의 역사가 새로운 지식의 계열이 되기도 한다고 일단 정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지지지지난 번 쯤의 글(이 블로그에 올린 <문진(問診) 그리고 청진(聽診), 촉진(觸診)..―인류학에서 관찰의 지위(3)>)에서 “계열과 맥락을 구별해서 부르는 것은 사실 말장난입니다만, 일단 개념적인 구분이 필요하기는 합니다. 맥락은 하나의 형태의 발생과정 혹은 그것에 대한 지식이나 재현(representation)을, 계열은 하나의 현상들 혹은 현상+맥락들 사이의 상대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구축된 지식이나 재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현상들 혹은 현상+맥락들’이라고 쓴 것은 현상과 맥락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호성은 지적인 혼란 혹은 연구자의 자질 부족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대개는 현상 자체가 시공간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즉 항상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지속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열과 맥락을 구별하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한 일이 됩니다만, 이 발생적 맥락에 대한 아카데미의 신화는 상당히 막강하므로, 이 신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바꿔 말하면 이 신화의 신봉자들로부터 쏟아질 탈맥락적인 지식이라는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서(브라가님의 표현을 빌자면 아마추어 정신분석학자의 황당한 상상―사실상 광기―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벗어나기 위해서) 일단 논의의 초기 단계에서 편의적으로 맥락과 계열을 분리하여 개념화하자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데요. 이러한 인식은 이에 대한 브라가님(및 그 룸메이트) 그리고 빠진서님의 논평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불가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락과 계열이라는 이상한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지지지지난 번 글로부터의 인용에 적은 것처럼 맥락에 대한 지식과 이에 대한 접근방법이 제도화되고 권력화함에 따라 다른 종류의 맥락들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접근의 여지 자체를 차단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런 의미에서, 공시적인 것에 대한 통시적인 것만이 계열인 것이 아니고, 국지적인 것에 대한 광역적인 것이 계열적인 지식일 수 있으며, 또한 어떤 경우에는 반대로 통시적이고 광역적인 지식들만이 맥락적 지식으로 설정되어 있을 경우 공시적이고 국지적인 지식들이 계열적인 지식들로 설정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매 개별 연구의 출발점에서 맥락은 연속적이고 일관된 연쇄관계들을 표상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계열은 단속적이고 분절적인 연쇄관계들을 표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특징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실제로 우리가 역사적 사상들을 검색해나갈 때 자료들 그리고 역사적 실재들 중에서 맥락으로서 연속적인 관계들을, 계열로서 단속적인 관계들을 검출해나간다는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전제가 되어야 할 인식은 맥락이든 계열이든 모두 본성적으로 연속적이지 않다는 점이 되어야 하겠지요.


기어츠의 세부 논지에 대해서는, 사실 저는 ‘중층기술’,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논평’ ‘발리의 시간과 인간과 행동’, ‘발리 닭싸움’ 이 네 가지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이와 관련해서 논쟁할 여지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기어츠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하는 식으로 일단 자위를 하고, 추후에 시간이 날 때 조금 더 읽어보고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그 글은 1997년 쯤의 한국문화인류학회 전국대회 발표초록집에 “문화의 재고와 재고의 감옥”인가 하는 제목으로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혹시 ‘발표자 중 누군가’가 그 글 원고를 가지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빠진서님의 논평은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클래스’가 영국어가 아니라 시공간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어디에서 싹텄는지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적었을 때는 “계급이라는 용어를 산업 사회의 등장 이전의 시기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조금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주장인 것 같군요. 스테이터스와 에스테이츠, 그리고 대표(레프레젠테이션)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군요. 단지,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질문을 던져본다면, 빠진서님의 설명에서는 산업화 이후의 사회에서의 사회관계의 본성은 경제적인 것이고 그 이전(왜냐하면 거기는 정치적인 대표성을 사회조직의 기본원리로 삼는 신분사회일 뿐만 아니라 또한 경제적인 원리로만 조직되는 사회관계로서의 계급조차 없었으니까)에서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식의 도식이 느껴지는데요. 이 도식 자체가 빠진서님의 설명틀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만, 또한 그러한 왜곡이 성립할 수 있는 여지가 지금의 설명틀에서는 너무나 명백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금 더 설명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라구르님의 지지난 번 댓글(이 블로그의 <가장무도 및 시공간들 사이의 '칸'에 대하여(1)>에 달린 세 번째 댓글)에서는 그 중 두 번째로 제기하신 문제, 즉 “어떤 논자는 신분층이 되기 이전에 그들은 계급으로 존재하였다가 법제적 특권을 취득함으로써 신분층으로 공고화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어법이 과연 맞는 것인가”가 이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어법이 그 자체로 틀린 점은 없지 않은가 생각되고, 라구르님은 그렇지 않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에 대해서 별로 많이 생각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라구르님께서 이 어법의 어떤 점이 문제라는 것인지 다시 조금만 설명을 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글은 아래 '쿠이이이이즈..'에 쓰신 라구르님의 댓글에 대한 답댓글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만, 쓰다보니 조금 길어져서 독자적인 글로 올립니다. 쓰다보니 발생한 또 하나의 문제는 쓰기 시작한 맥락을 놓쳐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인 채로 끝났다는 점인데요. 이건 이것대로 조만간 다시 정리를 해서 추가적인 설명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은 별 의미가 없고, 그냥 글만 있으면 너무 심심한 듯 하여 올려본 것입니다. '짤방'이라고 하나요?

***************

 

'가장무도' 문제는 몇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현재의 팀블로그의 전신으로 이와 비슷한 사이트(팀블로그가 아니라 홈페이지 형식의)가 운영된 적이 있었는데, 하다 보니 일정하게 침체기가 닥쳐왔었고, 그래서 "이게 무슨 동창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잡담만 할려는 거면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위기가 증폭된 일이 있었습니다. 인간관계 유지관리목적의 그룹활동이 되지 말자는 취지는 좋았는데, 지나면서 보니 그냥 그렇게 해소되어서 사는 게 서로에게 유익할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다시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것이 된 거죠(여기까지는 라구르님도 대충 짐작하시는 상황일 것 같습니다).


현재의 가장무도 상황은, 가장 중요하게는, 제 생각에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시작을 했지만, 동창회(이미 권력화한 사회적 기반 혹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학술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될 소지가 농후한)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만든 애초의 멤버십을 상기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를 자제하면서 새로운 팀블로그 아래에서의 인연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하다보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상황도 없지 않다는 거죠. 문제거리다 된다고 보면 사실 문제이기도 한데요. 잘 생각해보면 어차피 팀블로그가 지속되다보면 그 안에서도(즉 새로운 팀블로그 체제 아래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개인적인 여러 경험들과 그들만의 이야기꺼리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하니) 개인적인 친소관계나 관심의 공통점이랄지 학문적 혹은 정치적 입장의 공통성 내지 유사성이랄지 그런 것들에 기반을 둔 더욱 내밀한 관계라는 게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 그게 아주 꼭 전체적으로 틀을 유지하는데 적대적인 성격을 갖는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일단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걸 너무 조장하거나 튀는 행동들은 자제될 필요도 있겠지만요.


하여간에, 일단은, 이거 너무 까다롭게 보지 않고 넘어갔으면 하는데, 글쎄요, 이조차도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해본 문제는 아니므로, 실은 파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뭐 저와 라구르님과의 가장무도 역시 또 다른 쪽에서는 '월플라워' 적인 감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문제이니(저희 둘을 다 아는 사람이라면 무도장에 좀처럼 올 생각을 먹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몸매를 가진 두 남자가 '무도'를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희극적으로 생각되어 도저히 '월플라워'적인 감각으로 바라볼 수 없을 거 같기는 합니다만), 뭐 이런 종류의 코뮤니티라는 게 일정하게 그런 상호월플화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건 아닌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이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활동이 갖는 본질적으로 썰렁한 면모인 것이고, 그래서 그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죽어라고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게 아닐까요? 이 문제도 조금 더 블로그들이 굴러가게 되면 전체적으로 한 번 공개적인 논의를 통해 점검할 문제이기는 할 것 같습니다.


라구르님의 퀴즈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댓글을 통해 라구르님이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심으로써, 아니면 적어도 칼집이라도 잡으심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저희들이 맥락과 계열이라는 어휘를 가지고 토론해오던 주제와 상통하는 질문인 것으로(적어도 저에게는) 생각됩니다. 잠시 상기를 시키기 위해 인용을 하면, 여기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저는 지금 쓰고 있는 학위논문에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단 바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에서 ‘맥락’은 ‘해석 가능한 부호들(혹은 상징)의 상호 연결된 체계’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인류학자는 이를 통해 앞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 과정 등을 이해할 수 있게, 즉 중층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상정된다(기어츠 1998: 25). 이 글에서는 이를 특히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통해 흔히 연구되어온 하나의 소규모 사회에 대한 내적 설명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 ‘계열’은 관습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제된 시공간적 구분을 넘어 특정한 역사적ㆍ문화적 사상(事象)의 지속ㆍ공유나 분화ㆍ변화를 나타내는 지표들(indicators)의 상호연결된 체계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에서 특정 지표의 출현 혹은 소멸 양상을 통해 지속ㆍ공유나 분화ㆍ변화를 찾아낸다는 기획은 제3세대 아날학파의 계열사(serial history), 특히 보벨(Vovelle 1990: 16-19; 150-151; 232-244)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단지, 이 글에서의 문제의식은 보벨 등이 활용하는 역사자료들의 시계열, 즉 역사적 지표들의 반복적인 출현양상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단속적이라는 점, 그러한 지표의 활용이 시간계열에서만 아니라 공간계열을 통해서도 포착 가능하며 이것이 발견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 글에서는 이를 특히 위에서 적은 바의 의미에서 ‘맥락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회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는 조금 크게 본다면 용어나 개념들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 만들어진 순간의 시공간적 구체성ㆍ특수성을 벗어나서 다른 시공간 좌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게 되는 것인가, 열린다면 그것은 어떠한 조건에서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라구르님이 ‘계급’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저는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의 의해 구분된 사회집단이 아닌가요?"라고 답을 하다가 아차 했는데요. 일차적으로는 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에 의해 구분되지 않는다는 반례가 무한대로 많기에 그러한 정의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잊고 있었던) 점을 상기했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는 ‘클래스’가 영국어가 아니라 시공간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전제가 어디에서 싹텄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령 ‘봉건제(퓨달리즘)’는 더 이상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갖는 용어로 설정되고 있지 않지요. 마치 ‘직역’을 영국사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신분’도 실은 ‘봉건제’와 결부될 수 없다면 사용하기가 껄끄러운 용어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고, 조선의 양반을 ‘신분’이라거나 ‘신분’이 아니라거나 하면서 전개된 논쟁이 실은 모두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는 그래서 그걸(계급은 거의 완전히, 신분은 경향적으로) 쓰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대답할 수 없는 껄끄러운 토론에 말려드느니 조금 더 기술적(descriptive)인 용어로 쓰고 말겠다는 생각들인 거겠지요. 인류학자들의 경우에도 한때 문화라는 말을 쓰기가 조금 껄끄러운 상황에 있었습니다만(제가 기억하기로, 이 아수라장을 구성하고 있는 멤버 중 일부는 대학원 과정 중에 확실히 ‘문화’라는 용어의 해체를 주장하는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청 깨졌지만,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사실 한국문화인류학회 전국대회에서 발표되었던 가장 래디컬한 문제제기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요즘은 또 그냥 쓰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를 공격하기에는 다들 분석틀과 밥그릇 모두가 그와 너무 심각하게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계급이 떨어졌고, 신분이 거의 떨어졌고, 문화는 상당히 공허한 상태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고, 다음 순서는 국가가 또 떨어지는 순서가 되려나요? 앞으로 ‘탈국가시대’ 혹은 ‘초국경시대’라는 개념이 유행하게 되면, ‘조선은 독자적인 국가였는가?’라든가 ‘중국은 어디까지였는가?’와 같은 질문이 예비되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럴 경우 떨어질 지도 모르겠네요(인류학자이신 장정아 선생님은 이러한 입론에 대하여, 적어도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준에서의 사회현상에 대하여 초국가주의 혹은 탈국경화라고 이름붙이는 담론은 성급한 것이라는 취지를 포함하는 학위논문을 작성하신 바 있습니다만).


 

좁게 보면,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엄밀한 맥락의 추구가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강력한 개념들을 맞춰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은 학계에 두 가지 경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예전에는 감히 구성되거나 적용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개념을 탈시대/탈지역적으로 적용시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거겠죠. 가령,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연암을 해체적인 지식인으로 표상하는 담론의 등장 따위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학계가 가지는 전문성이 구체적인 맥락을 엄밀하게 제시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의해 담보되고 따라서 아카데미를 구성하기 위해 그것을 상호 확인하려드는 경향 역시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딱히 왜 그렇다는 점에 대해서는 설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양자에 대해서 모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으로 입지를 삼아왔습니다만, 이것이 기본적으로 자아분열적인 포즈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고, 그래서 위에서 적은 것과 같은 맥락/계열의 구분을 도입하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생각이 꼬이는군요. 다음에 또 기회가 나면 적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