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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0 쿠이이이즈~!! 계급, 신분, 문화, 특권 + 국가, 직역 (5)

제가 아는 어떤 분(지난번에 이 블로그에도 글을 쓰셨던 ‘라구르’라는 분입니다)이 저에게 퀴즈를 내셨는데요. 이 퀴즈의 특징은 출제자가 정답을 분명히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는 점, 그리고 출제자가 답변자였던 제게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아수라장에 대신 좀 출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수라장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해주실 분이 있으실 거 같다면서요.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양사고 동양사고 한국사고 간에 역사를 보는 큰 흐름이라는 것이 신분, 계급, 문화, 특권이라는 네 가지의 어휘를 가지고 이리저리 엮어서 틀을 짜는 거 같다는 거죠. 그런데, 그 분이 보기에는 이 네 가지 어휘에 대한 정의는 하지 않고, 그것이 결부되는 양상이 어느 시기에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만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는(정확히는 '했던')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퀴즈는, 이 네 어휘(신분, 계급, 문화, 특권)를 각각 정의하고, 그 정의에 바탕해서 역사현상(혹은 경향)을 설명하는 논리를 짜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써놓고 보니 퀴즈라기보다는 요청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제가 똑부러지게 답을 못하자 그 분이 주신 힌트(이상하죠? 정답을 모르면서 힌트를 주다니..)가 두 가지 있었는데요. 첫째는, 서양사는 이 네 어휘로 틀이 짜이는 것 같고, 한국사에 대해서도 이 네 어휘로 틀을 짜버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당신이 보기에 한국사(조선사)를 설명하려면 이 네 어휘에 ‘국가’와 ‘직역’이라는 두 단어를 덧붙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답니다. 으음.. ‘직역’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전근대사회에서 각각의 신분에 따라 정해진 역’이라고 되어 있네요(사전의 해설은 이 글 말미에 덧붙이겠습니다).

두 번째 힌트는, 조선사를 바라보는 기존의 틀은 본래 조선의 양반은 신분이 아니었는데, 특정 계급이 특정 시기에 자신의 사회적 성격을 신분화하여 양반이 신분이 되었다는 전제 아래, 그 시기가 고려시대이냐 조선시대이냐, 조선시대 중에서도 어느 시기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구도였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이 보시기에는 그 ‘신분화’라는 것은 결국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권리를 세습적인 특권으로 만듦으로써 문화적으로(즉 법적이고 제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웃기는 건 신분이 뭐고 계급이 뭐고 특권이나 문화가 뭔지를 정의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채로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에 대해서만 가지고 논쟁을 하니까 답도 안 나오고 더 이상 논의의 발전도 없었으며, 지금은 또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사회와 역사(현대사회 포함)를 바라보는 데에서 정말 중요한 이 네 어휘가 완전히 학술의 영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퀴즈의 성격을 조금 이해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나오는 '직역'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신역(身役)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신분에 따라 담당해야 하는 역의 종류가 달랐다. 조선왕조 체제하에서 모든 민은 그 신분에 상응하는 국역(國役)을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개개의 민에게 부과되는 신역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신분과 역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어느 역에 종사하는가에 따라 그 담당자의 신분이 규정되고 반대로 신분은 역을 규정하는 성격을 지녔다. 즉 개인이 사회 속에서 맡을 수 있는 직책에 따라 역의 종류가 규정되기 때문에 이를 직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양반이 관직에 종사할 경우, 이것은 직역으로 인정되어 다른 역이 면제된다. 그밖에 양반만이 소속되는 각종 군역에 종사함으로써 직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중인(中人)은 중앙 또는 지방관청의 서리(胥吏)나 기술관 등 자체가 신역이며 곧 직역이었다. 중인 이상의 신분에서 담당하는 직역은 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일정한 보상이 주어졌다. 관리가 될 경우 그에 해당하는 수조지(收租地)가 지급되거나 녹봉(祿俸)이 주어졌다. 또한 양반의 경우 일정기간 해당 군역에 종사하면 체아직(遞兒職)이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직역은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기도 했다. 한편 평민 이하의 신분에게도 군역(軍役)을 비롯한 각종 형태의 직역이 부과되었다. 양인과 천민에 있어서도 양역(良役:군역)·천역(賤役)의 구별이 있고, 군병만이 아니라 순시(巡視)·포도(捕盜) 등의 직무도 많았다. 양인의 최하위층인 신량역천층(身良役賤層)은, 신분은 양인이나 그 수행직무는 천역이었다. 이른바 칠반천역(七般賤役)으로 일컬어지는 조례()·나장(羅將)·일수(日守)·조군(漕軍)·수군(水軍)·봉군(烽軍)·역보(驛保) 등의 직역이 그것이다. 직역은 대체로 양인 이하의 신분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으로 성립되었다. 이같은 직역은 조선 중기 이후 양인 이하의 직역이 점차 현물납(現物納)의 형태로 변경됨에 따라 부세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