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일부러 포토샵을 건 듯한 빨간색이 환타라는 점은 놀랍군요. 그리고 환타 중에 저렇게 빨간 색이 나는 맛이 무슨 맛 환타인가 하는 점도 궁금합니다.


책의 탑은 책 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렸더라면 대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저 책의 탑은 그 학생의 특수한 개인기가 아니라 그곳 대학생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는 방식인 겁니까?


특수한 현상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맥락'이라는 것-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등등 여러 관형어를 붙일 수 있겠지요-이 실은 단속적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 인터뷰에 대해 종속적이지 않은 관찰이라는 방법의 독자적인 인식론적 지위를 이야기할 때 지적하고 싶었던 점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러니까 맥락 외의 형태적 규칙들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관찰에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레비스트로스가 역사적 방법과 구조적 방법이 실은 같은 거다라고 계속 말하면서도 구조적 방법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할 때 실은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방식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저는 현명한 절충론자 스타일인지라..) 그러니까 구조를 형태로, 역사를 맥락으로 전환하면, 우리의 이야기가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가 된다는 아이디어라는 거죠(..통하였느냐?)

그래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가 구조적 규칙을 열쇠로 동서고금을 넘나들었던 것처럼, 형태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우리가 맥락들을, 역사들을 벗어나(여기에서 맥락이나 역사는 인도네시아와 미국, 혹은 학문분과나 학계의 규칙처럼 각 지식들을 유효한 것으로 만든 기존의 질서들이 조직되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갑이라는 학문을 배울 때 갑학사를 먼저 배우는 것처럼.


물론 저는 기본적으로 '현명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역사적인 방법으로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옳은 인식론이겠지요.


쓰고 나서 보니 이게 뭔 말이다냐 싶군요. 그러니까 제 말씀은, 책탑 쌓기든, 환타우유든, 광화문이든, 맥락적인 진실들의 계열과 비맥락적인 진실들의 계열(그걸 계열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에 대한 지식이 정교화된다면)이 반씩(물론 정확히 '반'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섞여 있다는 거죠.

후자는 맥락을 벗어나서, 맥락에 구애받지 않고, 가령 전 세계의 미친놈들이 발작을 할 때마다 보이는 열다섯 가지 행동양식이라는 탈맥락적인 지식의 체계가 훨씬 설득력 있게 그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뭐 꼭 '전 세계'일 필요는 당연히 없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때 우리는 인터뷰와 구별되는, 문헌사료분석과 구별되는, 통계분석과 구별되는, '관찰'이라는 학문기법의 독자적인 인식론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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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맥락과 계열 앎/무지

    Tracked from Arcades Project by Us 2007/01/11 14:55  삭제

    엄청나게 심각한 댓글을 다셨던 낙장불입님 덕택에 자신의 글에 트랙백을 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댓글에는 트랙백을 달 수 없으니 제 글에 다는 수 밖에. 저는 '맥락'이라는 매우 편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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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브라가 2007/01/11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늦은 답변. 새빨간 환타의 맛은 '트로피칼 맛' 보다 더 진하다고 할까요 마치 어린 시절 혀를 새빨갛게 만들던 '죠스바'를 갈아놓은 듯했습니다. 책빼기 신공은 그리 보편적인 것 같진 않았구요. 다만 책의 탑은 여러번 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