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글

신변잡기 2007/06/27 13:53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한강연안의 마을을 훑으며, 노농(老農)을 찾아 배움을 얻고, 한 마을을 떠날 때마다 한 편씩 시를 쓰리라. 마침 고은이 만인보(萬人譜)를 쓰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것으로 나의 만촌보(萬村譜)를 삼을 요량이었다.


물론 여러 사정이 있었다. 생활, 작업, 이론, 감상(感傷), 스승과 선학들, 동료와 가족들. 모든 것이 나를 압도하며, 둘러쳐져 벽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크고 단단하며 육중했던 벽은, 듣는 것만으로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노농들의 이야기 자체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자재로 몸을 놀릴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압도했던 것들의 유허(遺墟)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꿈을 이루지 못하게 했던 것들, 나를 압도했던 벽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것들에 의지하여 오늘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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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양 2007/06/27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감사의 글이였어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한 문턱을 넘게 된 걸 축하드립니다. 그 문턱을 넘는 동안 접어두었던 일 그리고 새로 꿈꾸게 되었던 일들을, 이제 해야할 시간이겠지요.

  2. 가루라 2007/06/28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양양과 상태가 비슷하여 몇자 적고 갑니다.
    좋아요.. 기대됩니다...

  3. 브라가 2007/06/28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 Bandung, Indonesia에서 기쁜 소식을 접하여 글을 남깁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데 벌써 꿈을 운운하시다니... 하하하. 축하합니다. 그저 면허증이 하나 늘었을 뿐이지만.

  4. 눈사람 2007/06/29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앞으로가 기대되어요.

  5. 낙장불입 2007/07/03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뭐 감사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놓고, 다시 축하인사 주시는 댓글에 대해 또 감사하다는 답댓글을 달려니 좀 이상하네요. 하여 간에 감사합니다.

    반둥에서도 인터넷이 된다는 점, 아직도 반둥에 계시다는 점은 반갑네요(인도네시아 들어가시기 전에 여차 하면 한 달만에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서요).

    일단 상태는 좀 막막하네요. 2학기에 공부와 관련한 할 일은 계획이 있는데, 그냥 그렇게 당장 생각나는 일만 하고 살아도 되는 건지, 아니면 뭔가 더 도약할 궁리를 해야하는 건지 일단 잘 모르겠어요.

    무엇보다도 생활과 관련한 문제들이 좀 막연합니다. 당장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는데, 쓰는 동안 받았던 연구비는 끊어지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일단 할 일은 있지만, 이 역시 그냥 이렇게 살면 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의문들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6. 똠비 2007/07/06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려요! 부럽기도 하구요.. 일단 쉼표 한개 찍으셨잖아요. 만촌보대신 내신 논문 꼭 한번 읽어보고싶네요. 만촌보가 아니라서 다행이기도 하고...시에는 취미가 없는지라...^^;;;

  7. pajinseo 2007/07/06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일단락을 이루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꼭 읽어보고 싶은데... 언제쯤 읽게 될 수 있는거죠?

  8. 낙장불입 2007/07/06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7월 중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8월 7일이 제출기한인데, 7월 31일에 신분에 상응하지 않는 런던여행을 하게 되어서, 그 전에 내야할 상황이거든요. 당연히 두 분께도 드려야지요.

  9. CattivoMaestro 2007/07/06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이제서야 접속을 하게 되었네요.
    새로운 꿈들이 저역시 기대됩니다.

    저는 요즘 하노이에서 제가 어떤 꿈을 안고 베트남에 처음 왔었는지를 기억해 내느라 용을쓰고 있습니다. 제 나름의 몽정기가 끝난 다음이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뭔지 모를 허탈함이 몰려오네요.

    얼마전에는 국경지방에 갔다오면서 말그대로 닭장차 급의 버스를 타고 왔는데요. 마약 운반하시는 아주머니 4명이 저를 중심으로 쪼그려 앉는 바람에 (아주머니들이 어째 자기 짐을 제 다리 밑에 쑤셔 넣는다 했습니다 자기들은 다리 뻗고 가면서 말이지요) 또 경찰서로 버스채 직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노이 다 왔다고 다리뻗고 담배 하나 피우겠다고 좋아하던 찰라에 갑자기 공안이 나타나서 차를 가로 막더니 순식간에 차를 돌려서 인적없는 시골길로 가버리더군요.
    갈때는 펑크가나서 황량한 광산지대 길거리에서 두시간, 올때는 인적없는 하노이 외각의 경찰서에서 두시간을 보냈지요.

    다 사람 사는 일인데, 어째선지 요즘은 자꾸 제가 뭘 하고 있는가가 의심스러워집니다. 구체적이고 사변적인 것들의 혼란스러움만 더해가는 것 같구요. 그 혼란스러움 위론 너무나도 명료하고 확실한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베트남의 맑스레닌주의자들과의 대화가 덧 씌워져 있습니다만. 두 간극 사이에 끼어들고 나니까 좀 어이없이 황량하고 분열적인 상태가 되고 마네요.

    푸념이 길었습니다.

    여행 잘하시고, 건투를 빌겠습니다.
    벽에 기대고 서있을 수 있음에 안주하지 마시길 또한 바라는 마음으로. 어쩌면 벽들이 이미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10. 눈사람 2007/07/07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어떤 개념의 지도로도 읽을 수 없는 광막한 현실 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존의 지도들은 혼란을 더해주기만 하는 것 같은. 이런 경험들 중 과연 몇 퍼센트나 논문에 반영될 것인지.

  11. 낙장불입 2007/07/13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모두가 질척하게 그 시기를 지나면서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듯이, 몽정과 허탈이 끝도 없이 되풀이되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몽정기 자체가 끝나고 말지요. 어떻게 하면 몽정과 허탈 모두를, 아니면 어느 한쪽이라도 통제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러니 왕창 몽정하고 또 엄청 허탈해하기를 되풀이하는 것만이 진정 몽정기를 잘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몽정기가 끝나셨다니 이제 실질적인 교접 및 생산기로 접어드시는 모양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왕성한 교접 및 생산활동기가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 현대인이 처한 갖가지 스트레스적인, 호르몬 교란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 기간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시길(물론 남말 할 때가 아니긴 합니다만).

    까띠보 님의 글을 읽고, 까띠보 님에게 이상한 일이 자꾸 발생하는 것은 살고계신 지역의 특성인가 아니면 까띠보 님의 특성인가 하는 이야기를 양양과 했드랬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쪽이라는 결론도 내리지 않았습니다만, 둘 다 내심으로는 후자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는 듯한 대화의 분위기였지요(이건 뭐 강간 피해자의 특성이 강간을 유발한다는 경찰청식 사유양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살고 계신 지역과 까띠보 님의 상황 모두 잘 모르기는 하지만, '두 간극 사이의 황량한 그 자리'가 원래 우리가 들어가려던, '꿈에 그리던' 그 자리였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단지 까띠보 님의 조준경이 저보다 몇 클릭 더 좌측으로 이동해있는 듯이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12. sjy 2007/07/15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ontact me when you arrive here in London.
    My Contact number is from Lonodon is.
    01223-354807.

    sjy22@cam.ac.uk

    or

    sjy22kr@naver.com

    Su-Jong You

    PS. My Second Respond to a Korean collegule after when I lived here.

  13. 낙장불입 2007/07/16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럴께요. 수수께끼 속의 '유도인'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으니 무엇보다도 반갑고, 그런데 뿐만 아니라 뭔가 신비롭기도 하네요. 영어로 써있으니 뭔가 간첩 접선문 같기도 하고.. 사시는 곳이 런던이었군요. 저는 그 학교동네가 다른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마 체류일정 중 초반에 런던에 있고, 나중에는 조금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