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어떤 분(지난번에 이 블로그에도 글을 쓰셨던 ‘라구르’라는 분입니다)이 저에게 퀴즈를 내셨는데요. 이 퀴즈의 특징은 출제자가 정답을 분명히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는 점, 그리고 출제자가 답변자였던 제게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아수라장에 대신 좀 출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수라장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해주실 분이 있으실 거 같다면서요.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서양사고 동양사고 한국사고 간에 역사를 보는 큰 흐름이라는 것이 신분, 계급, 문화, 특권이라는 네 가지의 어휘를 가지고 이리저리 엮어서 틀을 짜는 거 같다는 거죠. 그런데, 그 분이 보기에는 이 네 가지 어휘에 대한 정의는 하지 않고, 그것이 결부되는 양상이 어느 시기에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만 가지고 논쟁을 하고 있는(정확히는 '했던')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의 퀴즈는, 이 네 어휘(신분, 계급, 문화, 특권)를 각각 정의하고, 그 정의에 바탕해서 역사현상(혹은 경향)을 설명하는 논리를 짜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써놓고 보니 퀴즈라기보다는 요청이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제가 똑부러지게 답을 못하자 그 분이 주신 힌트(이상하죠? 정답을 모르면서 힌트를 주다니..)가 두 가지 있었는데요. 첫째는, 서양사는 이 네 어휘로 틀이 짜이는 것 같고, 한국사에 대해서도 이 네 어휘로 틀을 짜버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당신이 보기에 한국사(조선사)를 설명하려면 이 네 어휘에 ‘국가’와 ‘직역’이라는 두 단어를 덧붙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답니다. 으음.. ‘직역’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전근대사회에서 각각의 신분에 따라 정해진 역’이라고 되어 있네요(사전의 해설은 이 글 말미에 덧붙이겠습니다).
두 번째 힌트는, 조선사를 바라보는 기존의 틀은 본래 조선의 양반은 신분이 아니었는데, 특정 계급이 특정 시기에 자신의 사회적 성격을 신분화하여 양반이 신분이 되었다는 전제 아래, 그 시기가 고려시대이냐 조선시대이냐, 조선시대 중에서도 어느 시기이냐를 놓고 논쟁하는 구도였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이 보시기에는 그 ‘신분화’라는 것은 결국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권리를 세습적인 특권으로 만듦으로써 문화적으로(즉 법적이고 제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인데, 웃기는 건 신분이 뭐고 계급이 뭐고 특권이나 문화가 뭔지를 정의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채로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에 대해서만 가지고 논쟁을 하니까 답도 안 나오고 더 이상 논의의 발전도 없었으며, 지금은 또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사회와 역사(현대사회 포함)를 바라보는 데에서 정말 중요한 이 네 어휘가 완전히 학술의 영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거였습니다.
어떻게 퀴즈의 성격을 조금 이해하실 수 있으셨습니까?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나오는 '직역'에 대한 설명을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신역(身役)이라고도 한다. 각각의 신분에 따라 담당해야 하는 역의 종류가 달랐다. 조선왕조 체제하에서 모든 민은 그 신분에 상응하는 국역(國役)을 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개개의 민에게 부과되는 신역은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신분과 역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어느 역에 종사하는가에 따라 그 담당자의 신분이 규정되고 반대로 신분은 역을 규정하는 성격을 지녔다. 즉 개인이 사회 속에서 맡을 수 있는 직책에 따라 역의 종류가 규정되기 때문에 이를 직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양반이 관직에 종사할 경우, 이것은 직역으로 인정되어 다른 역이 면제된다. 그밖에 양반만이 소속되는 각종 군역에 종사함으로써 직역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 중인(中人)은 중앙 또는 지방관청의 서리(胥吏)나 기술관 등 자체가 신역이며 곧 직역이었다. 중인 이상의 신분에서 담당하는 직역은 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일정한 보상이 주어졌다. 관리가 될 경우 그에 해당하는 수조지(收租地)가 지급되거나 녹봉(祿俸)이 주어졌다. 또한 양반의 경우 일정기간 해당 군역에 종사하면 체아직(遞兒職)이 제수되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직역은 의무인 동시에 특권이기도 했다. 한편 평민 이하의 신분에게도 군역(軍役)을 비롯한 각종 형태의 직역이 부과되었다. 양인과 천민에 있어서도 양역(良役:군역)·천역(賤役)의 구별이 있고, 군병만이 아니라 순시(巡視)·포도(捕盜) 등의 직무도 많았다. 양인의 최하위층인 신량역천층(身良役賤層)은, 신분은 양인이나 그 수행직무는 천역이었다. 이른바 칠반천역(七般賤役)으로 일컬어지는 조례(![]()
)·나장(羅將)·일수(日守)·조군(漕軍)·수군(水軍)·봉군(烽軍)·역보(驛保) 등의 직역이 그것이다. 직역은 대체로 양인 이하의 신분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으로 성립되었다. 이같은 직역은 조선 중기 이후 양인 이하의 직역이 점차 현물납(現物納)의 형태로 변경됨에 따라 부세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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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문제를 가져오셨네요. 작정하고 논문을 써야할 주제지만 그냥 떠오르는 생각만 남기고 가겠습니다.
신분, 계급, 특권, 문화, 국가, 직역이라는 카테고리는 같은 선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를 규명하려할 때에, 서양사에서 신분/계급과 같이 오래 어울려온 쌍이 국가라는 사회장치에 의해 문화와 특권이란 매개로 직역이라는 다른 범주와 비교될 수 있다... 뭐 이런 식의 연결은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물론 다른 식으로 관계를 서술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만.
워낙 굵직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하나를 정의내리면 그 하나에 따라 다른 다섯 개의 정의가 모두 크게 수정되어야 하는 그런 문제인데요. 만일 제 생각이 맞다면 사회분석에서 사용되어온 그 연결들 혹은 관계들의 패턴을 분석해야할 듯 합니다.
한국사에서 관행적으로 신분/계급 등의 용어가 사용되어온 이유를 찾는다면 굳이 숙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테고 그 이유는 아마도 국가/신분/계급/문화/특권 등의 일련의 연결들이 근대화이론(혹은 그 반테제)에 기반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으음.. 문제를 옮긴 저는 답변을 여전히 모르는 채로 있고, 실은 브라가님의 댓글을 읽고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만, 본래의 출제자셨던 라구르 님은 브라가님의 댓글을 읽고 어떤 감을 잡으셨다고,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하는 메시지를 전해오셨습니다. 이게 대체 워치코럼 된 일이란 말입니까.. 중간에서 전달한 저는 여전히 모르겠는데 전달의 양끝 터미널에 있는 분들은 해법의 단서를 주고 받았다니..
하여간에, 브라가님께는 라구르님의 감사 인사를 대신 전해 드립니다. 아마 직접 전달하시는 것이 더 정감이 있었겠지만, 인터넷에 별로 안 친하시고, 조금 더 친해지려는 의향 자체가 별로 없으신 거 같네요..
감사인사를 전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조금 더 도움말을 주실 분들께는 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만큼, 퀴즈 자체가 종료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퀴즈의 경품이 뭔지, 그 이전에 애초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는군요. 이 부분은 라구르님을 뵙게 되면 한 번 추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고답적인 문제를, 그것도 본인이 제기하기가 쑥스러워 낙장불입님을 통해 부탁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이제는 더이상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아니 지쳐서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지나버린 유행가와 같은 이야기로 비출수 있겠지만, 남진의 유행가처럼 여전히 저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빗나간 이야기지만 저는 사실 나훈아보다는 남진을 더 좋아 합니다. 나훈아는 너무 노래를 잘 불러요. 그래서 질려요. 남진은 평담해요. 그래서 권태가 덜해요. 저는 그것을 최근 제 친구가 다시 틀어주는 덜덜 떨리는 레코드 판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어요.)
어쨌든 낙장불입님이나 브라가님에게 거듭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경품으로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제 주머니가 조금만 더 넉넉해 지면 한턱 내죠.
그러나 저는 여전히 신분, 계급, 특권, 문화, 국가, 직역이라는 6개의 키워드를 중시하는 386세대입니다. 이 주제가 남진의 노래처럼 빛바랜 주제라고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이 말들에서 우리가 쌓아왔던 빛나는 금관을 봅니다. 그 중에서 제 주제는 문화와 특권인 데, 지금 이 주제에 대해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부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제 정체를 밝히자면 저는 조선시대의 전공자이지만 저는 이 주제가 조선시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한다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살면서 자꾸 자꾸 부딪치는 문제는 오히려 이 시대의 신분입니다. 이 신분은 볼수록 문화와 특권이 합쳐서 만들어진 것만 같아요. 특권이 하는 일인데 문화적으로 아니라고 하는 그런 어법이죠. 그래서 조선시대의 특권을 연구하여 우리가 갖는 특권과 신분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 일이 언제나 끝나는지 모르겠어요. 어제인가 후배 한 녀석이 질책 반 충고 반의 고마운 찌르기를 해오더군요. 물론 애정이 가득 느껴진 그런 것이었지만 그 말을 통해 오히려 이질감이 들었어요. 나란 사람이 경계성이 강한 인물인지라, 그것을 이해해달라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훌쩍 들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나의 학문이란 것이 10대 후반의 경계적 인간이 보았던 그 세계관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데 지금도 늘 그렇게 지지부진합니다. 혹시 제가 가끔 등장하여 그런 지지부진하고 철늦은 유행가를 틀어 놓더라도 용서해주시기를. 인터넷에 적응안되는 것도 그런 생활 습관의 먼 연장선상에 있는지라--
그건 그렇고 이곳을 드나드는 동학들께서는 그저 한 두개의 돌맹이라도 던져 놓으시기를. 혹 압니까. 고개마루의 탑이 될런지.
평담.. 라구르님의 남진-나훈아론은 설득력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워낙 남진, 나훈아에 대한 기억이 멀어서리..(혹시 다른 방문자들이 오해하실까봐 좀 설명을 드리면, 뭐 제가 80년대생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기억력이 약한 것이 특히 문제였던 것 같아요. 남진과 나훈아에 관심을 갖기에는 조금 나이가 어렸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라구르님의 철지난 유행가, 그러니까 신계특문국직송(song이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頌일 수도 있겠군요)은 듣기 좋은 노래이니 언제라도 내키실 때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평을 달면, 라구르님의 신계특문국직송 불가결성이라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또 문제의식의 최종 타겟이 현대의 '신분'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공감합니다. 단지, 현대의 그것을 '신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중세에 있어서의 신분(혹은 신분적 지위)의 특성이라든가 중세유럽이나 일본의 봉건제 하에서의 신분의 특성과 현대 한국(뭐 꼭 한국일 필요는 없는 것이겠습니다만)의 '특권적 지위'와의 차별성을 뭉개버리는 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요? 특히 라구르님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신분이 아니었던 양반이 일시적*제한적으로 주어진 특권적 지위를 영속화*세습화함으로써 신분화하였다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역시 현대사회에서의 특권적 지위는 이미 '신분'이라기보다는 근대사회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권적 지위를 영속화*세습화하고자 하는 지배계급의 열망이라는 수준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중세 이전의 사회와 근대 이후의 사회 사이의 차이와 공통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시야에 들어오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라구르님께서 적절히 헤쳐나가실 것으로 보지만..
늘 친절하신 낙장불입님. 또 한번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이 가장무도회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 일까요.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지만 그를 모른 척해야 하는. 아는 척을 해야 하지만 밝히지 않는 그런 파티 석상에서 그저 외톨이가 되어 저 한켠에서 술이나 들이키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또 어쩐 일일까요. 그 감정까지 책임져달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묘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가장무도회를 준비하는 또다른 예비 가장무도회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건 그렇고 현대의 신분에 대한 제 견해를 밝히자면, 그와 함께 우리 생각이 갖는 나쁜 습관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시대에 칸이 있을까요. 참으로 이 시대와 저 시대는 칸이 쳐져 있어서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넘어가면 양식이라는 것이 바뀌어지고 그 양식으로 규정된 것 외에 다른 일은 나타나지 않으며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더라도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동질성의 관점에서 연구되면 문제가 생기는건가요. 우리의 생각은 왜 칸이 쳐져 있을까요. 오히려 그 지점이 역사학과 민속학의 경계점이라고 보는 데 존경하는 낙장불입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우리 앞의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설명되기 위하여 그렇게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