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학위논문을 적고 있다는 점은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1장 '서론'의 3절 '연구의 개요' 중 제1소절이 '연구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2월말에 학과에 절차 상(즉 형식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초고를 적고 있는데요. 그 중 '연구의 방법'이라는 글을 올려 <아수라장>에 드나드시는 여러분의 공람에 붙일까 합니다.

현재 올리는 버전은 절차 상 제출하는 초고를 위한 것이고 3월말에 심사위원에게 돌리게 될 초고에는 이를 개정한 내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지도교수이신 모 선생님이 '연구방법에 대해 조금 세게 쓰는 것이 좋겠다'는 코멘트를 주신(여기에 올릴 글을 읽지 않고 본론만 보신 단계에서) 상태인지라 아마 내용은 훨씬 공을 들인 것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쓰게 될 문제의식은 지금 올리는 내용이 골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에서 공람에 붙이는 것은, 그 문제의식의 논리적인 혹은 전략적인 오류나 한계, 미진한 점이나 강조해야할 점에 대한 코멘트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아무도 댓글 안 다셔도 실망하지 않을 터이니, 일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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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구의 개요


 1) 연구의 방법


이 연구에서 사용한 농업 관련 인터뷰 자료는 박사과정진입과 함께 1999년 3월 24일 수원시 권선구 금곡동 중말(조산동)에서 시작하여 2005년 5월 27일 안성시 도기동 도구머리 마을을 끝으로 일단락을 지은 경기남부에서의 현지조사를 통해 얻은 것이다. 논문의 집필은 인터뷰 자료의 분류ㆍ정리를 마친 2005년 10월에 시작하였는데, 2005년 12월초부터 2006년 1월말까지, 그리고 2006년 9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는 문헌자료를 보완하느라 집필이 중단되었다. 본래 문헌작업은 인터뷰를 위한 현지조사를 진행하면서 혹은 논문 집필 중 간간이 진행해 왔었는데, 집필 중 크게 부족함을 느껴 집필을 중단하고 보완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각주: 이 ‘부족함’은 부분적으로 학위논문의 연구계획이 크게 두 차례의 수정을 거친 데에 따른 것이었는데, 수정 이전의 구상이 반영된 인터뷰 및 문헌 자료들은 언젠가 따로 검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현지조사 중의 인터뷰는 농업 분야로 제한되지 않았고, 반농반어촌의 어업이라든가 산촌이나 시가지 주변의 시탄(柴炭) 채취업과 같은 기타 생업, 유통과 장시, 가족과 친족, 사회조직과 신분관계, 의례와 놀이, 인구 및 마을 공간의 구성과 변화 등 촌락의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현지조사를 시작하던 당시에는 작업이 외주용역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 용역의 요구를 채우다보니 그리 된 것이었는데, 중간의 어느 시기인가부터는 그럴 의무가 없는 작업인 경우에도 질문을 넓혀서 진행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그리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불안감의 정체는 첫째로 연구주제의 해명에 당장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도 이 노농(老農)들의 이야기를 연구자는 물론 그 누구도 다시 듣고 기록할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점, 둘째로 가령 친족이나 마을조직, 의례나 놀이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농업기술이나 경제관행과 관련된 설명을 찾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 셋째, 그물을 넓게 펴고 촌락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해두지 않으면, 농업문제와 관련하여 연구자가 찾아낸 설명이 개연성이 있는 것인지 여부를 해당 촌락사회 자체의 맥락에서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유익한 불안감은 연구자의 학문성향이 인류학의 학문적 오리엔테이션의 강한 영향 아래에서 형성되었던 것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현지조사는 인터뷰 외에 마을ㆍ가정ㆍ개인 단위의 의례와 놀이 등에 대한 참여관찰을 포함하였지만, 이는 해당 작업이 외주용역에 의해 주어지거나 순전히 호기심에서 비롯한 경우에 한정되었으며, 조사 당시에나 집필 과정에서나 그 내용들이 이 연구에 포함시킬 성질의 자료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항시 전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조차 실은 말이 ‘참여’관찰이지, 연구자는 대개 사진을 찍고 있거나, 아니면 대개 연구주제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묵묵히 술과 고기를 축내고 있기 십상이었다. 연구과정이 이와 같이 ‘참여’적인 성격과 거리가 먼 냉랭한 것이었던 점은, 아마 다루는 시기가 주로 일제시기와 해방직후의 상황이고, 다루는 분야가 생산과 유통이며, 이것이 ‘참여’적으로 해명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옳거나 바람직한 인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확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연구방식이 현지조사라는 장을 형성하여 만난 연구자와 연구대상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서적인 공감대가 상당히 부족한 채로 끝나버린 것이었고, 인류학의 학문적 오리엔테이션의 영향 아래에서 훈련을 받은 연구자의 그것으로서는 상당히 미흡한 측면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의 과정은 이렇게 한 마을, 혹은 몇 사람과 긴밀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새로운 마을, 다른 새로운 사람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면서 그의 설명을 듣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농업기술과 경제관행이 어떻게 짜여있는지, 그것이 다른 마을이나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꼬치꼬치 캐묻고, 더 이상 설명을 들을 것이 없거나 단시간 내에 듣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같은 마을의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마을의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는 식이었다. 새롭게 마련된 인터뷰의 자리에서도 역시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물론 같은 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설명을 듣는다고 하여, 항상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배움을 청하고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연구자 자신이 배우는 바가 있고, 배우는 것이 있는 이상 질문의 내용이나 문답의 요령이 점차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1999년 3월 무렵에 가까운 조사에서 묻고 들은 내용은 2005년 5월 무렵에 가까운 조사에서 묻고 들은 내용과는 전혀 성격이 판이하였다. 그 판이함에 대해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면, 초기의 조사내용은 대개 논문의 집필과정에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조사초기의 그 수많은 마을 그리고 수많은 노농들과의 만남을 그런 식으로 허비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현지조사가 진행될수록, 논문의 초고가 완성되어 갈수록 큰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할 경우에는 다시 찾아 인터뷰의 자리를 만들거나 그것도 안 되면 전화로 보완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점은 아마 한국을 조사지로 택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같은 분들을 다시 찾기보다는, 앞서 적은 것처럼 새로운 마을, 새로운 사람을 찾아 인터뷰를 이어가는 방향을 택하였다. 같은 사람을 다시 찾아 묻는 시간에 다른 마을 혹은 다른 사람을 새로 찾아 배울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었고, 실제로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것이 옳거나 바람직한 방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마 연구의 목적, 그리고 연구자의 성향과 관련한 문제일 것이다.

연구의 목적과 관련하여서는 앞 두 절을 통해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후자의 문제에 대해 잠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연구자의 성향은, 정서적으로 공감하기보다는 지적으로 소통하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정아(2003: 35-36)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연구자의 위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즉 인권단체 간사도 기자도 아닌 ‘학생’이기 때문에 그들은 연구자에게 인권 등의 이야기를 내세우거나 자신의 불행을 과장해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덜 가졌고, 좀 더 쉽게 개인사를 이야기하였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이런 이야기들(가족, 힘든 이야기, 여자 친구 등), 고향친구들에겐 안 해. 여기서 같이 거류권 싸움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절대 안하고. 너는 이런 걸 이해해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 넌 어쨌든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니까. 사실 어떨 땐 낯선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더 편해.…”


그의 인터뷰 상황에 대해서는 연구자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아마 연구자의 그것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가 들으려고 했던 내용도 ‘가족, 힘든 이야기, 여자 친구’ 등 인간사의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을 통해 연구주제에 접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백하건대, 인터뷰가 혹 그런 이야기로 흐르게 되면,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원래의 줄거리로 되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느라, 사실 상대의 이야기를 거의 듣고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연구자의 현지조사과정을 돌아보고 장정아의 연구내용을 떠올리면, 연구주제와 관련한 내용에서도 실제로 그가 도달한 깊이나 내밀한 부분에는 결코 이를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 그의 대화상대가 ‘낯선 사람이지만 또 낯선 사람이기에 오히려 더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고, 중국인을 이해하려는 사람이고 그러려면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해준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국인’을 ‘농사’ 혹은 ‘농촌’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연구자가 인터뷰 과정에서 상대가 연구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와 관련해서 느꼈던 감각―장정아와 달리 연구자의 경우 이를 직접 확인해주는 이는 없었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물론 장정아의 경우 그 대화상대와 상당히 깊은 정서적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구자의 감각으로는, 이 설명의 전제는 장정아가 해당 주제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와 관련하여 진지하게 더 알고자 하며(즉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와 대화하려는 것이 아니며), 게다가 그 주제와 관련하여 아주 민감한 부분을 정교하게 건드리는 질문을 하였으리라는 것이다. 이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누자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야기를 회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물어보지 않은 점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명을 하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낯설다’든가 ‘친하다’는 것은 거의 부차적인 문제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자의 경우 전자에 해당하는 상대와는 일찌감치 인터뷰를 종료하고 다른 곳 혹은 다른 이를 찾아 떠났으며, 후자에 해당하는 상대에게는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꼬치꼬치 캐묻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한국의 농촌에는 이 후자의 종류의 인간형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며, 게다가 모든 농촌마을에 적어도 한둘씩은 이런 인간형에 해당하는 노농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농사와 생활의 달인이며, 탐구하는 자세로 경험을 축적하고 각종 정보를 흡수함으로써, 깊은 통찰력으로 사회와 역사를 보는 혜안을 갖춘 자들이다. 그리고 연구자가 연구대상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의 양과 깊이, 배우겠다는 진지한 자세, 적절한 단어와 표현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질문, 이런 것들의 구비 여부가, 일정하게 정서적 친밀감의 부재를 메워주면서, 이 노농들과 정서적인 공감대는 약하지만 지적인 쾌감은 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과정을 제어하는 가장 중요한 키[舵]는, 상대가 그저 ‘시골노인’이 아니라 나라의 바탕인 ‘조선노농’이라는 점, 그들에게 농사와 농촌, 농업,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배우기 위해 왔지만 결코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고 더불어 대화하고 논하겠다는 인식을 틀어쥐는 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루는 시기가 주로 일제시기이고 부분적으로 18ㆍ19세기와 해방직후시기의 몇 가지 문제를 거론하므로, 현지조사를 통해 얻은 인터뷰 자료 외에, 해당시기와 지역의 문헌에 대한 조사와 반영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다루는 시기와 지역을 불문하고, 역사인류학을 포함하여 모든 인류학, 그리고 모든 인문사회과학적 연구에 불가결한 과정이므로, 이 자체가 어떤 특별한 방법론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즉 구성된 텍스트를 사용하여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특정 사회역사적 현상에 대해 분석한다는 의미에서 이 글은 어떠한 특수한 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단지 현지조사를 통해 얻은 인터뷰 자료를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회역사적 현상의 분석에 사용한다는 것은, 이 ‘텍스트의 구성’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네 가지 정도 짚어둘 지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현지조사를 통해 얻은 인터뷰 자료를 특정 사회역사적 현상, 특히 과거의 어떤 시점 혹은 기간에 일어난 일의 분석에 사용하는 일은, 역사인류학자에게 여타의 인문사회과학자, 특히 문헌사학자에게 잘 허여되지 않는 특수한 지위를 부여한다. 즉 역사인류학자는 무엇보다도 인터뷰 대상자와 함께 자신이 사료로 사용할 텍스트를 스스로 구성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는 역사인류학자를 포함하여 인류학자에게는 낯설지 않은 일이지만, 역사학자에게는 상당히 낯선(혹은 낯설었던) 종류의 일이다. 이 점, 역사인류학자는 인류학자로서 인류학자에게 허용되고 훈련되어왔던 규칙들에 의거하여 사료 텍스트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학자, 특히 문헌사학자와 구별되어 역사인류학자에게 부여된 특수한 지위와 역할, 방법은 여기까지가 아닌가 한다. 그 후의 작업은, 역사학자이든 인류학자이든, 과거의 사회역사적 현상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이론적 혹은 기술적(技術的)인 면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어떤 종류의 원리나 규칙이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연구자는 전제하였다. 일단 구성된 사료 텍스트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기원이 구술(口述)이든 기술(記述)이든 동일한 원리와 규칙에 의해서 취급하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그러한 취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 약간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회역사적 현상에 대한 지시의 능력, 특히 그 신뢰성이나 대표성과 관련하여, 구술 텍스트와 문서 텍스트 사이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위계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위계관계는 구술 텍스트를 사료로 정당히 다루어야 한다고 보는 연구자의 의식 내에서도 조사와 집필 과정 내내 강력히 작용하고 있었다. 이 불평등성을 교정하는 방식, 교정되어야 할 정도, 교정의 방향은 각 연구자마다의 성향과 학문적 오리엔테이션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다. 연구자가 제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농민의 기억과 구술을 ‘시골노인’의 그것이 아니라 ‘조선노농’의 그것으로 이해하고자했던 것처럼, 문서 텍스트에 담긴 사실과 내러티브를 ‘서울촌놈’ 내지 ‘일본촌놈’―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혹 민족적 편견의 결과로 여길까 우려하여 사족을 달면, 굳이 ‘일본’을 언급하는 것은 주로 다루는 시기가 일제시기이고 조선의 일본인 텍스트 작성자들은 ‘서울촌놈’이 아니기 때문이다―의 그것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다. 이 점 ‘서울촌놈’과 ‘일본촌놈’으로 이루어진 조선총독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자의 의식 속에도 존재하는 불평등한 위계관계가 어느 정도 교정되어 양자의 위상이 그래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고, 구술 텍스트이든 문서 텍스트이든 같은 방식으로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일이 가능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 교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울러 밝혀둔다.

셋째, 흔히 있는 오해 중 하나는 구술 텍스트가 문서 텍스트에 비해 개인이라는 경험의 한계에 의해 왜곡이나 편견으로 오염되었을 위험이 크지만 또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생생한 현장의 경험과 느낌―즉 사회역사적 현상의 극히 주관적인 측면―을 전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문서 텍스트는 보다 전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하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부분적으로 타당하지만 부분적으로 그릇된 것이어서, 전적으로 그러하다고 간주한다면 이는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다. 역사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는, 문서 텍스트가 오히려 주관적인 편견과 왜곡 그리고 당대 현장의 상황과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구술 텍스트가 그러한 느낌이 배제된 채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경우를 도처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점은 이하 본문에서 연구자가 사용한 텍스트들, 그리고 그 텍스트들을 다루는 연구자의 방식을 통해 충분히 드러날 것으로 생각하기에, 여기에서는 추가적인 언급을 생략하기로 한다.

넷째, 이 점과 관련하여, 연구자의 경우, 객관적 성격의 구술 텍스트가 필요하고 인터뷰를 통해 그러한 성격이 강한 텍스트를 구성해내고자 할 때, 위력을 발휘하는 방법이 있었다는 점을 첨언해두고자 한다. 즉 삶의 물질적인 형태들, 혹은 비담론적인 실천이나 관행 등에 관한 박물학적인 정보를 노농들로부터 확인하고 그 연원에 대한 토론을 벌임으로써 의외의 수확을 올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한 삶의 물질적인 형태들로는 가령 기후나 토양에 관한 정보, 마을 내 논밭의 구성비나 공간형태, 두둑이나 고랑의 작성법과 규격, 농기구 등 각종 생활도구의 재질이나 만듦새, 농사작업의 선후관계라든가 기후조건ㆍ다른 농사작업ㆍ다른 생활사적 사건들과의 관련성, 마을의 인구나 성씨집단 혹은 작업집단의 규모, 그리고 이것들과 그 밖의 여러 가지를 가리키는 민속용어들과, 그에 대한 설명에 사용되는 표현이나 내러티브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분포도 등이 있을 수 있으며, 당연히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문서 텍스트들이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로 인터뷰를 이끌어가며, 인터뷰를 통해 구성 가능한 사료 텍스트의 새로운 영역, 그리고 인류학에서 ‘관찰’이라는 방법이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개척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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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 2007/02/2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체 인류학에서 현지조사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인류학에서는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하면 현지조사라고 말하는 것 입니까? 현지조사는 인터뷰를 통한 적절한 자료수집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현지조사는 질적조사와는 다른 것입니까? 정서적 조사와 지적조사는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2. CattivoMaestro 2007/03/03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일본? 님과 비슷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물론 양적/질적의 이분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학 연구조사 방법론를 언급하는 잘 못된 경향 하나가 스스로의 연구를 질적이고 정서적인 조사라는 점만 혹은 그것을 가지고서만 연구의 의의를 선언하는 그러니까 연구 대상과 방법이 학적 의의의 전체적 가치를 규정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나마도 이면에는 몇년 있었다느니, 몇번 갔었다느니 하는 순수 양적관념에 기대어 연구의 "질"을 보장 받으려 하기 일 쑤이고 말이지요.

    솔직히 글이 재미는 있는데, 전체적으로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블로그란 공간 자체가 이런 텍스트와 잘 궁합이 안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밑줄도 쫙쫙 그어가면서 읽는 기쁨이 없어서 인지 모르겠네요.

    먼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이 연구에서 보고 싶은 것은 기본적으로 민속학적 연구방법론과 역사인류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한 논의와 새로운 시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구방법에 대한 언급과 평가가 없다는 것은 좀 안타깝습니다. 장정아의 사례가 있긴 합니다만, 그건 차라리 연구자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대체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인용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도 않고 (농촌은 외국이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선언해주지 않는 이상)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조금은 과하게 논리적 비약을 시도한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비슷한 연구사례에서 방법론 장을 디벼주시거나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사실 인터뷰의 어떤 상황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그 경험이라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복제나 재생이 불가한 독특성(singularity)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학생, 외국인, 도시인 등등의 연구자의 지위가 어떤 일반적인 효과와 결과를 산출한다고 인과적으로 설명될 성질의 것인가 싶습니다. 만약 일화의 소개와 그에 대한 분석과 평가라면 의미는 있겠습니다만, 보다 적극적으로 어떤 "앎의 의지"와 "(담)지자의 권위"에 대한 분석을 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그러니까 농업이라는 생산활동이 이미 어느정도 고립된 주체들의 삶의 영역으로 전화된 상황에서 그러나 그 삶의 형식이 어떤 역사적 생산양식으로써 지녀온 헤게모니가 현재적 "앎, 이해, 인정"의 지평안에서 연구자의 개입으로 어떻게 재배열되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궁금한 부분입니다. 로잘도가 기어츠를 비판하는 논의에 대한 재고도 해볼 수 있겠지요.

    다른 한편에서 연구자의 불안감의 정체를 좀 더 학적인 논의로 상승시켜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기록으로도 연구의 의의가 인정되었던, 그러니까 인류학적 전통에서 보면 구제인류학 (salvage anthropology) 의 전통과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민속연구전통에서 만들어진 (volkgeist)가 교차하고 있는 민속, 혹은 역사인류학에 대한 어떤 평가가 필요한 것도 같습니다.
    사실 뭔가 있을 것이라는 뭔가 있어야한다는 기대감과 확신이 없었다면 "불안감" 따윈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 불안감은 이를테면 뭔가 있는데 못 보는 것이 개인적인 능력의 문제로 전화될 순간을 회피하기 위한 과정에서 생산되는 정서적 상태일 테니까요.
    인류학적 지식생산에서 핵심적인 문제이고, 이른바 경험적 사회과학 (그것이 질적연구로 선택적 방법론으로 규정되더라도)일반에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도 사실 어떤 식으로든 "불안"을 용인하는 것일 테니까요.

    많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어떻게 정리가 안되네요. (전세계 인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도 정작 자기 동네 사람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의 토론을 참관하는 중이어서...)

    기술의 전략이라는 점에서, 물론 열심히 잘 꾸준히 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독자들도 뭔가 "방법"을 고민할 수 있는 자리들을 마련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사람 아니면 아무도 못 할 일이라면 무슨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저자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 무리수로 느껴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방법론이 연구에 대한 저자의 서명을 확증하는 규준이되는 것은 자연과학적 연구보고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보이구요. 그런 문제는 사실 문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새로운 "논점"의 문제 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학생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사생활도 이야기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거나 하는 일반론도 방법론으로써는 좀 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 우리는 한때 미드와 관련된 논쟁이랄지 오스카루이스와 관한 문제등을 통해서 연구자의 다양한 지위와 방법론적 차등이 산출하는 효과들을 알고 있지 않나도 싶구요.
    특별히 제가 이부분에서 관심이 있는 것은 이른바 "범위 (Scale)"에 관한문제 입니다. 경험과 추상, 수집과 맥락등등을 좀 더 논의를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연구 과정 보고라는 수준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말그대로 "방법론"에 대한 논의로 갈것인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네요.

    또 생각나면 쓰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진짜 변화가 필요한 논의이긴 하니까요.
    이젠 정말 모두들 인류학은
    인터뷰 학이거나 무슨 현지 방문기나 체류기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 강해져 있는 것 같아서...
    "조사를 잘했다"라는 평가가 인류학자에게 주는 최대 찬사가 된지 오래인 것 같고. 무슨 조사학도 아닌데 말이지요.

    참 버튼 누르려다 생각 났는데요. Ethnoscience 의 전통 그러니까 농속, 기술, 환경에 대한 분류를 현지인 혹은 경험인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겠다는 논의도 참고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CattivoMaestro 2007/03/03 0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가지를 빼먹었네요.

    한국 연구의 잇점을 언급하는 부분은 좀 이상합니다. 다른 나라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에 대한 재확인 절차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무슨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가 불분명한 이상,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은데요. 차라리 그런 스테레오 타입을 깨는 어떤 논의가 더 의미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연구가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갈 때마다 달라지는 "불확정성"의 문제로 아주 어려운 연구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랄지 일정기간을 "체류"로 연구하는 것과 잦은 "방문"으로 연구하는 방식이 만들어내는 상이한 내러티브랄지 등등이 의미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해외연구들도 "입국"과 "출국"의 의례효과를 제외하면 여전히 "방문조사" 이지만요. 어쨌든 농사짓는 인류학자가 아닌이상 제 생각에는 굳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면서도 감각적 차이는 분명 있고, 그걸 그냥 보여주는 것 보다는 그 톡톡쏘거나 쿡쿡찌르는 독특한 감각의 의미를 설정해주는 것이 학의 자리에 더 가깝지 않나 싶네요.

    다른 하나는, 그 "외주 용역"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건 정말 핵심적인 것 같은데. 너무 평범하게 처리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생산 용역, 하청의 시대가 된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식생산이 뭐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것과 병행되는 학적 관심과 연구가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것 같거든요. 특히 민속, 역사인류학적 연구라는 것이 대부분 사설연구소 혹은 관 주도 하에서 되고 있다고 할 때 그 생산의 독특한 구조의 영향에 대한 평가를 해 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4. 낙장불입 2007/03/03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으.. 미치겠군요. 화가 나서가 아니라 좋아서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현재 기본적인 고민은 까띠보.. 님 말씀처럼 방법론에 관한 논의로 한 챕터를 써서 살풀이를 하느냐(풀어야 할 살이 무엇이고 어떻게 풀 것인가와는 별도로), 아니면 나도 조사 했다는 알리바이(물론 현장부재증명이 아니라 현장존재증명이 되겠습니다만. 그런데 참, 이럴 경우-현장존재증명-에도 영어로는 알리바이라고 쓸 수 있는 건가요?)를 대는 선에서 마무리할 거냐의 문제입니다. 이건 문제의식이나 능력도 문제이지만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한지라 고민이 한 꺼풀을 더 뒤집어 쓰고 있는 것입니다만, 일단 어떤 선에서 낙착을 보아야할지가 문제이네요. 아마 두 분의 코멘트에 대한 답글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쓸 것인지뿐만 아니라 써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챕터로 쓰게 되면, 까띠보 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들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학문분과의 문제, 지역단위 설정과 스케일의 문제, 역사적 연구와 현지조사, 인터뷰의 문제, 외주용역의 문제를 비롯하여 이를 둘러싼 학제의 정치성 혹은 시스템으로서의 생산성이랄지 개별연구성과에 대한 규정력의 문제 등을 다 언급하려면 책 한 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만, 하여튼 살풀이를 하려면 이 문제들이 전체적으로 진지하면서도 센스있게 짚어질 필요가 있겠지요. 역사적인 현지조사에 관계있는 모든 당사자를 집합시킬 수 있는 초절정의 논의를 만들 수 있다면 환상적이겠지요. 사실 그런 걸 하고 싶기는 했는데,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가고 있고, 이번 학기에 박사만 된다면 육체에서 빼내는 방법을 알 길이 없는 영혼, 그리고 그와 절박하게 결부된 부분만 빼고는 뭐든지 다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드는지라...(이거, 물론 과장으로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코멘트 주신 부분에 대한 정식의 답변 이전에 간단한 점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한국연구의 잇점'을 언급한 것처럼 보이고 만 부분은 실은 조사 자체가 별 거 아니었다는, 그러니까 좀 거창하게 말하면 현지조사를 탈신비화시키기 위해서 자조적인 내용이랍시고 쓴 것인데요. 잘 되지 않은 것 같군요. 역시 어깨에 힘을 빼는 일이 제일 어렵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빠져 있는지가 글을 읽는 이가 제일 먼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인 것 같고, 그게 빠질수록 유머와 페이소스를 갖춘 한 방의 위력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워라..

    아, 그리고 정아 누나의 논문을 인용한 부분은, 서론을 쓰기 위해 서울대 박사학위논문의 서론을 다시 다 읽어보았는데, 읽다가 생각난 부분을 메모해둔 것을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가져다 쓴 거라 그렇게 된 것이고, 저도 제출하고 나서 다시 읽으면서 바로 이건 빼야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지 저의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에서 그런 부분을 찾아내고 싶다는 느낌은 강하게 있었는데, 왜냐하면 제가 '지적..'이라고 부른 부분이 현지조사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그걸 제 경우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우에서 좀 찾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정아 누나가 선택된 것은, 아시다시피 정아누나 서론의 연구방법 검토가 정말 너무나 진지하고 세밀하여 그런 부분에 대한 감각을 독자가 읽어낼 수 있게 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경배!).

    참, 에스노사이언스 부분은, 저도 대학원 내내 왕한석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도 해보았고 지금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고, 제가 전공하는 분야와 결정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아시다시피 이 분야에서 왕 선생님이 막강한 강자이시고, 왕 선생님을 만족시킬 만큼 방법론적으로 체계적이고 고유한 독자적인 분석기법이랄지 연구의 틀을 철저히 관철하는 조사가 되지 않는 한, 제가 학위논문이나 기타 자잘하게 쓰는 글에서 그걸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더랬습니다. 그렇다고 왕 선생님을 건너뛰어서 에스노사이언스에 접근하는 것은 제게는 불가능한 일이구요. 이게 제가 왕 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답답한 부분이기도 하고, 인용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지었으면서도 존경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하여간 뭔가 언젠가 통할 날이 오겠지요.

    요는, 인류학이 무엇이냐, 현지조사란 무엇이냐, 인류학적 현지조사는 본질적으로 질적 연구(로 제한되어 있느)냐, 현지조사 외의 인류학적 관점이나 방법을 규정할 수 있는 속성은 무엇이냐, 그런 게 있기는 하냐,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는 어떻게 구분되는 거냐, 질적 연구란 무엇이냐라는 식의 구시대적 토론의 틀을 탈피하면서, 까띠보..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비적으로 전승되는 비기(秘技)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으로서 연구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내린달지, 쟁점을 명제화할 때 사용되는 어휘들을 보다 정치적이고 명료하며 직관적인 것으로 바꾸어내는 일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5. CattivoMaestro 2007/03/0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면을 끓여먹을까 그냥 자빠져 잘까 고민아닌 고민하다가 들어왔는데요.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황적 문제는 있겠지만, 얼마간 몇가지 논점들의 자리를 확보해 주시는게 논문이후에 다른 쪽글로 논지를 펼치시는데 좋은 전략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말그대로 삽입의 미학이랄까 사정의 미학이 아니라..(너무 마초적이군요. 비유가..쩝)

    사실 연구 대상은 서로 많이 다를 수 있는데요, 우리는 아직 어떤 이론화의 과정에서 담론의 영역에서 공유하는 인식론적 지평을 좀 처럼 확보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서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러니까 적어도 "인류학"하고 있다는 어떤 공감각을 확인하는데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글에 "사람이 안보인다"던지 하는 상투적 평가는 그 공감각이 잘 형성 안될때 만들어지는 비평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인류학 독자들은 방법론장에 특히나 그들의 독특한 책읽기 훈육방식이었던 "서론" 도착증을 함께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도 같구요. 따라서 얼마간 말씀하신 "현재존재증명" 전략은 불충분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시보니 "구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시고 계신것 같은데요. 그 부분을 좀 더 강화시키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옛날에 윤택림 선생께서 구술사에 관한 언급을 곧잘 하셨었는데, 그런 방식이 그후론 전혀 재론이 안되다 보니 그냥 정설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인류학은 역시 구술(사)"가 되어버렸나도 싶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일천해서 그 분야에 책하나 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여튼 나름대로 그 분야에서 정전이라고 간주되었던 월터 옹이란 신부 학자 (아주 독특한 커리어의 미국 신부님이지요)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도 평가를 한번 해주시면 연구자의 방법론이 차지한 이론적 위치를 좀 더 분명히 해 줄 수 있지 않을까도 싶구요. 옛날에 하도 허접하게 읽어서 (번역이 대머리 촉진체로 되어 있었던 기억만 나고) 내용은 잘 생각이 안납니다만..

    • 낙장불입 2007/03/10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도, 가장 큰 것은 그것인데요. 즉 현장존재증명(그러니까 별다른 논쟁을 제기하거나 특수하고 대단한 논점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면서 조사를 이렇게 했네 저렇게 했네 하고 늘어놓는 연구방법)을 만든다는 생각도 이상한 생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장된 족보(그러니까 제가 밝히고자 했던 문제 자체를 푸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던 레퍼런스들을 연구 혹은 연구자의 계보상의 적통관계를 증명하거나 같은 적통 내에 있는 자들과 공감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사후적으로 재구성해내는 방식. 물론 까띠보... 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때의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지는 '상투적인 공감각'을 극복하기 위해 본격적이고 정식으로 논의를 제기하라는 뜻인 거는 잘 알고 있습니다)를 학위논문의 앞에 떡하니 가져다 놓는 것도 이상한 습관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논쟁이고 소통이고 하기 때문에 그 논쟁과 소통을 위해서라면 역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공부를 하기로 했으면 공부하는 집안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고, 전에 진서빠님이 가끔 하시던 말씀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니 절에 있으려면 절의 규칙을 따라야된다 싶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논쟁과 소통은 꼭 그런 식으로 제기해야 가능한 것이냐 하는 회의 자체도 접기 어렵기도 하단 말이죠...

  6. 무명씨 2007/03/22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장불입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요점은 구술텍스트(인터뷰)와 문헌텍스트(사료)를 모으는 것이 주요한 연구방법이었다는 것이죠?

    한국의 인류학 연구를 생각할 때마다 과연 우리에게 '전통''공동체' '대화'란 것이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서구의 인류학의 경우 대부분 인류학 텍스트는 다른 인류학자들과의 대화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낙장불입님의 방법론은 단지 '살풀이'와 '존재증명' 사이의 갈등(이건 '도'아니면 '모' 식인데 개도 있고 걸도 있고 윷도 있습니다)의 문제라기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의식'에서 굳이 '식민지 조선의 농촌'이라는 시대적 선택이 구술텍스트와 문헌자료의 조사라는 연구방법을 취하도록 했는지 한국의 다른 농촌연구와의 대화를 통해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이 부분이 기본 논의 리뷰 식으로 한 꼭지로 들어가는 게 관행이었던 듯 한데 이건 진지한 대화가 아닌 듯).

    이는 기존 한국인류학(혹은 다른 사회과학)의 농촌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요. 이미 이루어진 한국 농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의 연구방법과 그것이 가져온 연구결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 주로 경험적 현지조사일터인데)

    낙장불입님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뭔가 자격지심이 있는 듯한 문체였습니다. 여기서 자격지심이란 자신의 논문이 이러한 연구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긍정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왜 그것을 피했는지, 꺼려했는지의 뉘앙스를 풍기는군요(가령 난 왜 장정아처럼 정서적 공감대를 배제했는가? 왜 초기조사들은 소용없는 것들이었는가? 어떤 특수한 방법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등등 이외에도 더 많지만 생략). '기존의 방법들 중 적절한 것이 없어서 내가 생각하기에 맞는 듯한 방식으로 했지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다'로 저한테 읽히네요(제 마음대로 낙장불입님의 생각을 만들어 내서 죄송! 비인격적으로 쓰고 싶은데 한국어의 특수성 혹은 저의 특수성상 안 되네요).

    지도교수님이 연구방법을 좀 강하게 쓰라는 것은 자신이 취한 연구방법이 연구내용과 관련되어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필연성, 개연성을 강조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 낙장불입 2007/03/22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논평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점철되는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실은 부정적인 뉘앙스라기보다는, 제 딴에는, '내 연구방법에 아무것도 특별한 것은 없다'는 점을 적으려던 것이었는데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괜히 베베 꼬아 쓰는 바람에 부정적인 뉘앙스의 글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하여 지금 다시 쓰려고 붙들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쓰느냐보다도, 무얼 써야 하는가 하는 점부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오늘도 하루종일 이거 봤다가 저거 봤다가 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을 그러고 있으니까 상당히 마음이 초조해지네요. 내일 아침이 되면 초조한 나머지 뭔가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오늘은 이만 집에 갈까 합니다.

  7. 짠자 2007/05/02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학위논문을 적고 있다는 점은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학위논문을 쓴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학위논문 적는다는 말은 첨 들어봅니다.
    적다와 쓰다의 차이는 무얼까...
    심심해서 태클 한 번 걸어봤습니다.

  8. 낙장불입 2007/05/03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1. 어떤 내용을 글로 쓰다. 2. 장부나 일기 따위를 작성하다.>로 되어 있네요. 거의 뜻 차이는 없지 않나요? 뜻 차이가 없는데 '쓰다'가 아닌 '적다'로 쓰게 된 것은, 돌이켜보건대 저의 대학원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한 대학원 선배의 어휘세계가 아마 저의 어휘세계에도 영향을 미친 탓일 겁니다. 그 선배는 아마 다른 어떤 선배에게 영향을 받아 그리 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저도 그 선배랑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기 전에는 '적다'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저도 역시 심심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