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2-23일 워싱턴디씨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는 <중국 중산층의 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많은 발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과 질문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진보적인가, 아닌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사회를 뒤흔들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하겠는가 아니면 체제안정적인 역할에 안주하겠는가>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있어, 미국사회의 관심사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한국 한상진교수도 발표를 했는데, 한국의 계층관련 연구를 계속 하다가 중국과 비교해서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계속 써온 '중민' 개념을 여기에도 도입하였고, 그의 논지는:
<중국과 한국은 민본전통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중산층을 단일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중산층 내부를 쪼개어 '中民(Middling Grassroots)'과 '中産 主流(Propertied mainstream)'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중민'은, 중국에서 나온 설문조사자료들을 분석해보니, 한국의 중민처럼 상당히 '민중(人民)중심적인(people-first)'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정부중심적인(government-first)' 태도와 구분되더라,
그러니 더이상 중산층 전체가 보수적이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논하지 말자, 나는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이렇게 중산층에 대한 이중구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로도 다른 대부분의 발표들이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있고 상당히 수준도 떨어지는 데 비해 이 발표는 그런 '이분법적 시각'을 지적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이 발표의 치명적 문제점은, 그가 '민중중심적' 태도의 근거로 든 모든 사례들(-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답한 면, 사회문제들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불만을 표시한 점 등)은 기존의 이분법적 틀인 '진보성'에도 그대로 똑같이 들어맞는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즉, 그가 '민본전통'으로 인한 '민중중심적 태도'를 밝혀냈다며 새롭게 드는 내용들이 사실은 기존의 틀로도 다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민중중심적 태도와 진보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자신을 더 identify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보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중국과 홍콩'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9/10/15 '민본전통/민중중심적 태도'와 '진보성'의 관계? (4)
- 2008/02/10 홍콩 "황제"의 서거 (8)
- 2008/02/05 "우리의 생활이 모두 topic 이 되어버린 후, 우린 어디 가서 살 수 있겠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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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曾杜財, 자칭 '구룡황제(九龍皇帝)'
생년월일: 1921년 11월 12일
출생지: 중국 광동성
가족: 부인, 4남4녀
직업: 농부, 방직공장 노동자, 공사장 노동자, 쓰레기수집처 관리원
2007년 7월 15일, 한 홍콩인의 죽음에 언론들은 일제히 '황제의 서거(駕崩)'란 표현을 쓰며 그를 애도했다.
홍콩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그의 글씨를 본 적 있는 '구룡황제' 曾杜財는, 원래 농부였으나 식민정부에 의해 땅을 빼았겼다. 그리고는 한번 고향에 갔다가 족보를 뒤져보고는, 자신이 살던 구룡(현재의 홍콩을 이루고 있는 지역 중 섬쪽 말고 중국본토와 붙어있는 부분) 지역 일대가 본래 영국에 할양되기 전 왕이 그의 조상에게 하사했던 땅임을 발견하고는, 그 다음부터 자신을 '황제'라 칭하면서 여기저기(길거리의 온갖 기둥, 쓰레기통, 벽 등에) 글씨를 쓰고 다니면서 '주권'을 선포하였다.
쓰레기수집처 관리원을 할 때 수백 파운드 무게의 쓰레기통에 깔려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나,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그의 글씨쓰기는 계속되었다.
'공공지역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매번 경찰에 잡혀가 "안 가본 경찰서가 없고", 최근까지도 홍콩정부는 계속 청소부를 시켜 그의 글씨를 지웠다. 경찰과 싸울 때면 그는 손수 만든 '황제' 신분증을 꺼내보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으나, 2002년 마지막 법정심리 때 자신이 쓴 글씨임을 인정하여 벌금 500홍콩달러(한국돈 약 65,000원)를 물었다.
한번은 어느 여자 區의원이 그에게 공공장소를 더럽히지 않는 게 좋잖냐고 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후여, 그럼 나한테 글씨쓸 공간을 좀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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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유명해지면서, 지인 劉健威의 도움으로 1997년 그의 평생 소원인 '길거리 전시회'를 열었고, 그 해 홍콩의 디자이너가 그의 글씨를 의상 디자인에도 차용했다.
200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홍콩인 최초로 초청받았다.
2004년에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글씨가 5.5만 홍콩달러(약7백만원)에 팔렸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홍콩에서 그의 글씨는 계속 청소부들에 의해 지워졌다.
그리고 그는 정부의 생계수당으로 연명하며, 아주 낡고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홀로 살다가 말년에는 양로원에 들어가 외로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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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회의원 李卓人은, 그가 바로 홍콩의 풀뿌리문화를 대표한다고 여겨, 그가 있는 양로원까지 찾아가 그에게 <직선을 쟁취하자, 정치를 인민에게 돌려달라>는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유명세를 타고 광고를 세 개 찍었는데, 광고료는 처음엔 2천 홍콩달러(약35만원)이다가 크게 올라 나중엔 7천 홍콩달러(약85만원)까지 받았다.
그러나 홍콩 사회복지부에서 이걸 알고는, 생계수당을 받는 사람으로서 수입이 제한규정보다 많다면서, 그에게 주는 수당에서 7천 홍콩달러를 깎았다.
그 후 그는 영화에 출연할 때도 단1원도 받지 않았다.
그는,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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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망 후에도 홍콩정부가 그의 글씨를 지우라고 시켰다며 어느 직원이 방송에 제보해왔고, 정부측에 확인하자 정부는 부인하며, 그러나 남아있는 글씨들을 어떻게 할지 아직 못 정했다고 대답했다.
정신병자라며 평생 손가락질받던 그의 죽음에, 홍콩 언론들은 황제의 죽음에만 쓰는 '駕崩'이란 표현을 썼고, 요즘의 '집합기억' 붐 속에서 그의 글씨는 홍콩의 소중한 '집합기억'으로 추억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홍콩TV뉴스: www.youtube.com/watch?v=3t0-lHkwTes
어떤 홍콩네티즌이 만든, 그를 애도하는 노래와 동영상:
http://hk.youtube.com/watch?v=DRZTE6DYZO0&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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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2008/02/11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내가 처음으로 댓글을 다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군요. 항상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댓글을 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멘트를 달게 되는 것 같아요.^^ 카테고리가 많은데, 꼭꼭 잘 채워가길 바랍니다. (본인이 블로그를 일 년 채 방치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 민망한 인사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리고 처음 글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집합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유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논문 쓰는 중간중간에 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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똠비 2008/02/12 0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양 반가워, 논문 잘 쓰거라..!
언니 블로그 문 여신거 축하드려요! 심심할때 들어와볼 곳이 또 생겼네..ㅎㅎ 저는 왠일인지 제 블로그에 접속이 안되서 만들어 놓기만 하고 일년 넘게 글 한개도 못올리고 있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왔을것만 같은 이야기네요. 근데, 지금 홍콩 언론에서 황제 취급을 해주는 게 진지하게 그러는 건가요? 물론 죽은 사람을 조롱하지는 않겠지만...정말 그가 주장한대로 홍콩이 그의 것이었는데 정당하지 않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건지(아니겠지요..^^;;;), 아니면 그를 매개로 뭔가 다른 걸 기억/기념/추모하려는 건지... 작금의 '집합기억 유행' 현상에 과장이나 왜곡이 있다면 혹시 어떤 다른 표현되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닌지가 궁금해지는데요.. 정아언니의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 -
양양 2008/02/12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댓글 달아놓고 잠시 쉴 겸 다시 들어와보니 똠비님이 그새 다녀가셨군요. 똠비님도 반가워. 그대도 논문 열심히 쓰시게. 나는 2학기 심사를 목표로 1월부터 논문쓰기에 돌입했지만 1월말에 벌써 한 풀 꺾이고 지금이야 다시 재가동 시작중일세. (남의 블로그에 와서 내 근황 남기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네^^)
언젠가 낙장불입님과 블로그에 남겨진 댓글들을 보며, 참 사람의 스타일이라는 게 무언지,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누가 쓴 댓글인지 알 수 있다는 등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똠비님의 댓글을 보니, 똠비님은 수시로 포지션를 바꾸는 수퍼보드를 탄 손오공같다는 낙장불입님의 평이 생각이 나네요.
똠비님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어서 저도 몇 글자 끄적이게 되는데요. 사실 집합기억이란 문제가 몇 년 동안 제 사고 내에 없었기 때문인지, 구룡황제와 관련해서 집합기억이라는 말이 운위되는 게 생경하게 느껴지면서 이 말이 정말 홍콩에서 유행은 유행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나는 구룡황제 글을 읽으면서 공공지역에 대한 낙서와 이 때문에 경찰과 계속하여 씨름을 벌였다는 대목에 먼저 눈길이 갔거든요. 물론 구룡황제가 공공지역에 대한 낙서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건 '기억'이란 부분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집합기억 붐 속에서 어떤 시각으로 이 소용돌이를 바라볼 것인가, 똠비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용돌이 안에서 같이 요동하면서 이 사태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고, 밖에서 다른 시각으로 이 소용돌이를 횡단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슨 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유권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고요. 소유권은 협소한 것 같고, 권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과학계의 권력론 과잉에 대해 최근 권리론을 화두로 꺼내고 있는 분이 주위에 계신데, 저의 짧은 언어로 썰을 길게 풀 수도 없고... 그렇지만, 내부에서 같이 요동하면서 돌파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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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아 2008/02/12 1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모두들 너무 반갑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홍콩에서 황제 취급을 해주는 건, 물론 '진지하게' 그러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생전에 한번도 그에게 인정해주지 않았던 칭호를, 이젠 그에 대한 미안함과 추모의 마음으로 붙여주는 거죠, 따옴표를 붙여서 --.
집합기억은 분명 과잉의 현상이 있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있습니다. 제가 일단 주목하는 것은, 그래도 홍콩인들이, 그동안 자기들의 정체성을 단지 <중국 본토와의 차이>에 기반하여 주장하던(제 박사논문에서 이야기했듯) 데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자기들의 기억, 자기들의 스토리에 기반하여 <우리 홍콩>이라는 것을 positive 하게 제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그 점에서 사실 저는 매우 반갑습니다.
똠비와 양양이 이야기한 것들 모두, 제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권리, 이런 쪽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요. 역시 -- 블로그를 미약하나마 개설하길 잘했네요. -
양양 2008/02/14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니, 최근에 memory와 관련하여 읽은 책이 있었답니다. Landscape, Memory, and History란 제목의 책인데요, 에디팅한 책인지라 깊이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서론과 논문 한 편만 읽고, 또 다른 논문 한 편은 발제만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단정적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논문 대상이 과거에 만들어진 지형지물과 관계된 것이라, Landscape과 History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는데, 읽어보니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었어요. 제목도 <경관, 기억, 역사>라기보다는 <경관, 기억, 정체성>이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두 키워드의 연결은 이미 익숙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논자들이 경관이란 부분을 끌어들이는 것은 앤더슨의 책에 나오는 "무명용사의 비"와 같은 일종의 기억의 매개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 책의 논자들은 정체성과 관련해서 경관이라는 개념이 주는 시사점은 특정 공동체의 바운더리에 동형적으로 붙박혀 있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강하게 장소성에 고착되는 정체성의 형성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관이라는 개념 내에 있는 지각적인 측면(언표화되지 못할지라도 이미지로 각인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은 기억의 주관적인 측면(같은 풍경을 똑같이 화폭에 그리는 화가들이 없는 것처럼)과 상호주관적인 측면(지각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점에서)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며, 집합 기억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획일화되지는 않는(지각화된 이미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논자들은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글에 달린 댓글에서 저는 왕가위 영화나 첨밀밀에 나오는 홍콩을 떠올렸고, 그러고보니 첫 번째 글이나 여기 글이나 경관적인 측면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할 때 모임에 나온 선생님들이 책에 실린 대상 자체가 시골이거나 부족 사회여서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요...


홍콩의 요즘 최고의 화두는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 集體回憶)이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있었던 스타페리 부두의 종탑 철거(49년 역사를 지닌)가 몇 가지 우연한 계기로 갑자기 관심을 끌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홍콩에 대한 기억들"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애도하게 되었고, <무차별적 철거를 통한 발전>이라는 홍콩정부의 모델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정치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시위를 싫어하던 젊은이들조차 종탑철거반대운동에 뛰어들어 부두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철거를 몸으로 막으면서, 이제 드디어 "새로운 사회운동"이 홍콩에 도래했다는 평론가들의 흥분에 찬 논평이 쏟아져나왔다.
(이 젊은이 중 한 명은, 몇 년 전 홍콩에서 있었던 한국 농민들의 FTA 반대시위를 보면서 처음으로 '새로운 방식의 정치운동'에 눈을 떴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한다. 시위라고는 신물이 나고 싫었던 그에게, 삼보일배, 물에 뛰어들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장을 전달하는 한국 농민들의 시위는 신선했고, 아, 정치를, 반대를 이런 식으로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집합기억 찾기' 붐이다.
그동안 우습게 보던 남루한 건물, 시장, 오래된 골목, 이런 것들이 '기억이 담겨있는 가치있는 유산'이라 주장되고,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 대열에 국회의원, 학자들도 가세했다.
그리고 이런 곳들에는 전문가가 이끄는 때아닌 '현장답사' 붐이 일고 있다.
그런 와중에 홍콩의 한 문화계 인사(梁寶山)는 일갈한다.(明報 '世記'欄, 2007.3.22)
"서민들이 살던 지역들은 먼저 재개발에 의해 '더러운 지역'이 되어버리고, 그 다음엔 중산층들에 의해 '집합기억'이 되어버린다."
"왜 끊임없이 '박물관'을 만들고 '창의적 공간'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문화라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 도시는 점점, 생활이란 게 원래 신기할 게 없고 특별한 게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는가? 우리의 생활이 모두 topic 이 되어버린 다음, 우린 어디 가서 살 수 있겠는가?"
'집합기억' 운운이나 '문화 만들기'가 종종 야기하는 또다른 타자화라는 주제는 인류학에서 지극히 익숙한 주제이지만, <왜 우리는 삶이란 게 별 게 없음을 점점 못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이 또한 지극히 인류학적인 질문이라 하더라도, 참신했다.
'집합기억'을 운운하면서 그 속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얻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만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는.
마지막으로 흥미롭고도 씁쓸한 것 한 가지.
위의 필자는 말한다.
"정부는 삼쉬포(빈민가)에 '마사회 창의예술센터'를 만들고, 근처의 오래된 공공임대주택건물을 '임대주택(公屋)박물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정부는 '삼쉬포 문화지대'를 만들려 한다. 북경의 798에 '마오 주석 만세'가 있듯, 여기에선 공공임대주택 기억을 차용하고 있다"고.
내가 몇 년 전 북경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살아있는 공간이라 느꼈던 798(따샨즈), 과거 마오시대 사회주의적 국가주도 발전의 상징이던 그 곳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의 생기넘치는 예술, 거기에 여전히 남아있는(일부러 더 뚜렷이 색칠한) '마오주석 만세'라는 글씨가, 이젠 너무나 재빨리 '생기'를 잃고 또하나의 전범이 되어, 홍콩에서는 정부주도의 문화지대 건설에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홍콩의 가장 아픈 기억인 공공임대주택(식민시대 열악한 사회기반의 상징, 나중에 별도의 글로 자세히 설명)은 이제 정부에 의해, 북경의 798과 같이 '과거'와 '기억'에 기반한 문화공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어버린다.
혁명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언제나, 빛나오르는 건 한 순간이요, 그것이 타인들에 의해 사랑받고 광범하게 영향을 미칠수록 '빛남'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반복되는, 그러나 지켜보는 것이 매번 슬픈 역설 --.
그리고, 그 '빛나오르는 순간'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글로 쓰고 싶다고, 여기 있는 아수라장 사람들과 세미나하던 기억,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던 기억 ---.
* 사진설명.
- 첫번째사진: 철거되고 있는 스타페리부두 종탑.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새벽에 갑자기 철거를 강행했고, 부속들을 일단 폐허 속에 "보관"해두었다.
- 두번째사진: 스타페리부두에 이어 쟁점이 된 퀸즈피어(황후부두) 철거반대 농성장에 와서 격려하는 주윤발. "당신들이 만일 부두를 지켜낼 수 있다면, 당신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황후부두도 결국 철거되었다.
- 세번째사진: 가장 오래된 공공임대주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홍콩의 오래된 지역들(빈민가)> 관련 전시. 정부는 이 곳을 공공임대주택박물관으로 만들어 과거를 '기억'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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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2008/02/12 0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의 글을 읽는 묘미 아니면 힘, 이도 아니면 난처함이라고 해야 할까.
사태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한편에 이와는 양가적인 열정 또는 집착이랄까, 어쨌든 언니의 아이러니한 감정이 집요하게 느껴진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도처에 넘처나는 집합기억에 대해 씁쓸함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어떤 기억의 끄트머리를 계속 붙잡고 싶어한다는... 화석화된 기억과 한때의 餘震이 이어지는 기억과의 차이 또는 경계는 무엇일까,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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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읽었던 구절과 자장님의 질문이 공명하여 '웅웅' 울리는 듯 합니다.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이었는데요. (미국)학자들은 귀엽기도 하지. 자국민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더 스스로를 일치시키는지 한번 조사해보시지. 확실한 것은 <개발도상국 맞춤형> 연구질문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맞춤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은 그 질문에 만족할 수 없고, <진보의 정의>와 같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토픽의 바다에 빠지게 되겠지만요. 중산층의 진보성/체제 안주 여부라는 질문으로 <번역>되고 타사회에 대한 호기심 혹은 관심으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음, 잠깐 사이에 글이 약간 바뀌었네요. 뭔가 처음 글에 비해 다듬으신 듯한데, 처음 글이 더 멋있었던 듯.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과 같은 지나치게 외교적인 말씀은 그냥 빼주셔요. 그리고 저는 사실 '중국의 미래'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굉장히 한정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같아서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 부분은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만, 뭔가 잠깐 읽었던 원래 글이 더 제가 답하기 힘든 멋진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니 그 글도 다시 올려주셔요.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도 말씀 부탁합니다.
사실 브루킹스의 저 세미나는 그 수준낮음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브루킹스의 이런 세미나가 '중국 전문가들' 대상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른 주제에 대해 듣고(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지만, 글쎄요, 한국에서같으면 신문에도 나지 않을(즉 일반 대중들도 중국에 대해 알 만한) 이야기들을 자랑스레이 하고 있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라는 이야기는 역시, 그냥 '이분법적인 질문이다', '뻔한 질문이다'라는 식의 비판을 넘어서서 다른 지평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같습니다. 감사.
본래 댓글과 지금의 버전이 다른 건 자장님에 대한 <외교적 표현>이 아니라 나오키 사카이의 <번역과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생각이 안나서 폐기한 부분인데요. 서구의 이론 틀에서의 몇몇 개념들이 일본에 <번역>되면서 그와 연결되는 논의들이 증식하게 된다는 식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중산층이 진보적인가 아닌가"란 사회운동가들의 입장에선 쓸모없는 질문이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어떻게 선동할 것인가를 묻는 이에게 그 호명의 대상이 얼마나 진보적인가 혹은 체제순응적인가를 미리 알아야할 필요도 없고 안다해도 그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고려대상일 뿐이겠지요. "진보성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이중구속적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 중산층은 진보적인가/체제순응적인가란 가설적 질문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지젝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유럽지성계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전 사회주의블록의 morality, 아노미, 대혼란 상태에 대해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붇느냐고 자문한 후, 그는 시장경제로의 '충격요법'의 효과, 더딘 민주주의화라는 주제 자체가 유럽의 문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단언합니다. 중국의 중산층에 대해 물으며 그것을 진보/보수의 이분법에서 사로잡힌 틀에 박힌 설문에 의지하는 행위자체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은폐하는 <관심의 경제>라는 가설을 세워봄직도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동남아 연구에서 반복되는 부정부패(corruption)에 대한 한심스러운 발표를 들으며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부정부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것이 아니냐?"라 반문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당한 적도 있었고.
개발도상국 맞춤형 질문...ㅋ
그런데 <관심의 경제> 또는 <비인간행위자인 (자기 증식적이며, 사람들에게 말하게 만드는) 질문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담론>이라는 문제설정(<담론>의 개념이 열어젖힌 문제지평)과는 어떻게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