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15 '민본전통/민중중심적 태도'와 '진보성'의 관계? (4)
  2. 2009/10/08 도시의 매력 (4)

2009년 9월 22-23일 워싱턴디씨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는 <중국 중산층의 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많은 발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과 질문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진보적인가, 아닌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사회를 뒤흔들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하겠는가 아니면 체제안정적인 역할에 안주하겠는가>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있어, 미국사회의 관심사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한국 한상진교수도 발표를 했는데, 한국의 계층관련 연구를 계속 하다가 중국과 비교해서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계속 써온 '중민' 개념을 여기에도 도입하였고, 그의 논지는:
<중국과 한국은 민본전통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중산층을 단일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중산층 내부를 쪼개어 '中民(Middling Grassroots)'과 '中産 主流(Propertied mainstream)'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중민'은, 중국에서 나온 설문조사자료들을 분석해보니, 한국의 중민처럼 상당히 '민중(人民)중심적인(people-first)'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정부중심적인(government-first)' 태도와 구분되더라,
그러니 더이상 중산층 전체가 보수적이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논하지 말자, 나는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이렇게 중산층에 대한 이중구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로도 다른 대부분의 발표들이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있고 상당히 수준도 떨어지는 데 비해 이 발표는 그런 '이분법적 시각'을 지적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이 발표의 치명적 문제점은, 그가 '민중중심적' 태도의 근거로 든 모든 사례들(-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답한 면, 사회문제들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불만을 표시한 점 등)은 기존의 이분법적 틀인 '진보성'에도 그대로 똑같이 들어맞는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즉, 그가 '민본전통'으로 인한 '민중중심적 태도'를 밝혀냈다며 새롭게 드는 내용들이 사실은 기존의 틀로도 다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민중중심적 태도와 진보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자신을 더 identify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보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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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cade 2009/10/15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젯밤에 읽었던 구절과 자장님의 질문이 공명하여 '웅웅' 울리는 듯 합니다.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이었는데요. (미국)학자들은 귀엽기도 하지. 자국민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더 스스로를 일치시키는지 한번 조사해보시지. 확실한 것은 <개발도상국 맞춤형> 연구질문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맞춤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은 그 질문에 만족할 수 없고, <진보의 정의>와 같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토픽의 바다에 빠지게 되겠지만요. 중산층의 진보성/체제 안주 여부라는 질문으로 <번역>되고 타사회에 대한 호기심 혹은 관심으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2. 자장 2009/10/15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잠깐 사이에 글이 약간 바뀌었네요. 뭔가 처음 글에 비해 다듬으신 듯한데, 처음 글이 더 멋있었던 듯.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과 같은 지나치게 외교적인 말씀은 그냥 빼주셔요. 그리고 저는 사실 '중국의 미래'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굉장히 한정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같아서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 부분은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만, 뭔가 잠깐 읽었던 원래 글이 더 제가 답하기 힘든 멋진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니 그 글도 다시 올려주셔요.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도 말씀 부탁합니다.
    사실 브루킹스의 저 세미나는 그 수준낮음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브루킹스의 이런 세미나가 '중국 전문가들' 대상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른 주제에 대해 듣고(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지만, 글쎄요, 한국에서같으면 신문에도 나지 않을(즉 일반 대중들도 중국에 대해 알 만한) 이야기들을 자랑스레이 하고 있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라는 이야기는 역시, 그냥 '이분법적인 질문이다', '뻔한 질문이다'라는 식의 비판을 넘어서서 다른 지평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같습니다. 감사.

    • arcade 2009/10/15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래 댓글과 지금의 버전이 다른 건 자장님에 대한 <외교적 표현>이 아니라 나오키 사카이의 <번역과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생각이 안나서 폐기한 부분인데요. 서구의 이론 틀에서의 몇몇 개념들이 일본에 <번역>되면서 그와 연결되는 논의들이 증식하게 된다는 식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중산층이 진보적인가 아닌가"란 사회운동가들의 입장에선 쓸모없는 질문이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어떻게 선동할 것인가를 묻는 이에게 그 호명의 대상이 얼마나 진보적인가 혹은 체제순응적인가를 미리 알아야할 필요도 없고 안다해도 그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고려대상일 뿐이겠지요. "진보성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이중구속적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 중산층은 진보적인가/체제순응적인가란 가설적 질문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지젝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유럽지성계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전 사회주의블록의 morality, 아노미, 대혼란 상태에 대해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붇느냐고 자문한 후, 그는 시장경제로의 '충격요법'의 효과, 더딘 민주주의화라는 주제 자체가 유럽의 문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단언합니다. 중국의 중산층에 대해 물으며 그것을 진보/보수의 이분법에서 사로잡힌 틀에 박힌 설문에 의지하는 행위자체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은폐하는 <관심의 경제>라는 가설을 세워봄직도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동남아 연구에서 반복되는 부정부패(corruption)에 대한 한심스러운 발표를 들으며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부정부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것이 아니냐?"라 반문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당한 적도 있었고.

  3. 눈사람 2009/10/15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발도상국 맞춤형 질문...ㅋ
    그런데 <관심의 경제> 또는 <비인간행위자인 (자기 증식적이며, 사람들에게 말하게 만드는) 질문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담론>이라는 문제설정(<담론>의 개념이 열어젖힌 문제지평)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도시의 매력

분류없음 2009/10/08 13:35

아케이드가 겹쳐있는 몰(mall)은 왜 <이상적인 거리의 집합, 꿈의 도시>로 이야기되는 걸까요?
이론적인 족보는 모릅니다만, 그저 제가 홍콩에 있을 때 했던 생각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때 저는 중국 본토에서 오려는 사람들을 현지조사하며 내내 스스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왜 이들은 여기 와서 그토록 비좁고 비참한 방에서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는가,
왜 이들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홍콩의 번화가와 바닷가에서 돌아다닐 때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하는가.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객관적인' 이유들 말고도요)

제가 오래 있으면서 그들과 많이 동화가 되며 느낀 것 한 가지는,
홍콩의 매력은, (그리고 아마 많은 도시의 매력은)
내가 '소유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내가 그것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을 뉠 곳은 비좁은 뒷골목 방이지만,
나는 언제든지 뛰쳐나와서 황홀한 야경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몰이 꿈의 도시인 이유가 혹시 이런 것과 관련이 되나요?
아니면 전혀 다른 '구조'의 문제인가요?


어쨌든 저 자신은 도시의 북적거림 속에서 분명 '흥분'을 느낍니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바닷가나 산이 아닌, 도시의 뒷골목과 시장을 다닐 때 가슴이 뛰고요.

4대강이니 대운하니 하는, 한 지도자의 오래된 '아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개발과,
을씨년스럽게 버려질 수도 있지만 또 한동안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킬 몰의 건설을 똑같이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러면 오히려, 설명되어야 할 그 사람들의 '흥분'은 묻혀져버리는 것 아닐까요?
<엄청난 규모의 파괴와 비효율적인 결과>라는 묘사는 본의아니게 많은 부분을 사상해버리는 것 아닐까요?

이 글은, 아케이드님 본인도 반둥의 거리에 느끼는 '매혹'과 어떻게 연관이 되나요?


물론, 서울역을 비롯하여 사방에 생겨나는 그 수많은 판박이 쇼핑몰들이 얼마나 천박하고 웃긴지를 모르는 바 아니며, 결국 그런 판박이 경쟁 속에서 서로를 죽이게 될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코엑스쇼핑몰과 명동을 돌아보며 제 홍콩 친구가, 정말 한국은 24시간 너무나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곳같다며 흥분하던 것은 또 사실입니다.

물론 고전적인 진부한 설명틀이 또 생각납니다: 예를 들어 타임스 스퀘어를 비롯해어 유명 도시들의 유명한 장소들은 단지 아케이드나 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곳에서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는.
그러나 아케이드님의 '인간/비인간 행위자'의 틀에서는 아마 이런 식의 진부한 구조(- 즉 '인간의 활동 = 의미' vs. '인간의 활동이 들어가지 않은 장소 자체 (또는 인간의 활동을 배제한 채 똑같이 복제되는 장소들) = 무의미(=죽어있음)')를 넘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케이드님의 '비인간행위자' 틀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흥분'은 어떻게 처리되는 건가요?
또, 아케이드님의 틀에서는 그런 <도시의 북적거림과 웅성댐>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TAG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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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도시의 접힘과 펼쳐짐

    Tracked from 나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2009/10/08 16:38  삭제

    도시정글, 자카르타 베짝, 바자이, 앙콧, 트랜스 자카르타. 오토바이. 이들은 도시정글을 누비는 탈 것들이다. 도시공간은 주름져있다. 그것은 온갖 것들에 의해 접히고 그 접힘을 공간을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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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사람 2009/10/08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질문이 와닿네요. '비인간 행위자' 틀에서 '감정'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2. 양양 2009/10/08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임스퀘어의 소문을 듣고 어제 언니랑 구경을 갔었는데요, 2시간도 채 안 되어서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울 언니가 그랬답니다. 기분전환하려고 나왔는데, 자본의 힘에 눌려서 간다고. 제가 한 마디 덧붙였죠. 정말 돈이 없는 건 그렇다치더라도 체력이 딸려서 그 힘을 상대할 수 없다고요. 공간을 즐기려면, 그러니까 자기 장소로 만들려면 걸어다니면서 접수가 되어야 하는데, 타임스퀘어는 그러기에는 너무 커요. 여유로운 공간 배치 때문에 흥분보다는 차가운 세련됨이 느껴지는 곳이라고나 할까...

  3. 눈사람 2009/10/08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임스퀘어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데.

  4. arcade 2009/10/0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으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만, 제가 4대강 : 대형몰을 나란히 놓은 이유는, 시대착오적? 국가주도형 토건국가론(사실 토건국가론자체가 지진국가론 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위험한 담론이죠)에 대해서는 "말"이 쌓여가지만, 도심재개발에 의한 대형몰의 건설에 대해선 "말들"이 미끄러져가는 상황에 대해 의아하다는 뉘앙스였습니다. 당연히 전 2009년 한국의 <배치> 혹은 <장치>로서 꿈의 도시인 겹쳐진 아케이드가 그 비효율과 파괴의 크기만치 강렬한 열광과 설레임을 만들어내내고 있다는 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기획에서 대형 몰이 머지않아 썰렁한 실패작으로 버려지게 될지 안될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벤야민도 파리 아케이드의 몰락 후에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구상했으며, 푸코가 분석한 판놉티콘이 벤담의 설계대로 실현된 예는 거의 없었죠. 그것들은 <추상기계>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