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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미술비평을 전공하는 친구와 함께 김홍도전을 찾았을 때, 그의 특별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설명을 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설명은, 위의 '기와이기'그림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왜 지붕위의 저 사람이 기와를 하늘로 던져올리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고, 그래서 답사 다니면서 일꾼들을 만날 때마다 담배 한 가치씩 주며 물어봤다고.
그런데 한번 어떤 사람이 그림을 보더니 말하더란다. 자기들이 기와를 일 때, 암키와와 수키와를 번갈아 놓는데, 그런 일을 하면서 지루하니까 위로 한번씩 던져올렸다가 받곤 한다고, 아마 그러고 있는 걸 거라고.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렇게 일꾼들에게 담배 한 가치씩 주면서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 속 행동의 의미를 물어보고 다녔다는 그가, 좋았다.
그림을 설명하는 그의 강연은, 비록 그에 대한 평처럼 지나치게 감정적인 면이 있다 해도, 마음을 울렸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본 김홍도전이 너무 좋아서, 그림도록도 사서 두고두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권력'이 되었다며 비판을 받을 때에도 나는 생각했다.
그런 권력은 있어도 좋다고, 없는 것보다 좋다고.
비록 사람들이 그의 책을 들고 그 궤적대로 움직이며, 유적을 보면서도 그의 책 속 설명을 외우고, 그가 언급한 음식점을 찾아가고 그런 '웃기는' 현상이 존재한다 해도, 그래도 그런 권력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그가, 문화재청장이 되어, 온갖 구설수에 오를 만한 행동을 하고, 한국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관행'들을 다 써먹는(이명박처럼) 걸 보는 건, 참 서글프다.

그래도 그의 열정만은 진심일 거라고, 그래서 숭례문에 대해서도 누구 못지않게 진심으로 참담해하고 마음아파했을 거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런다면 그가 부인과 함께 대한항공 협찬받아 갔다 해도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는 그저 서둘러 사직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하고,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주머니에 손꽂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환하게 웃으며 대책회의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다시 그의 책을 읽는다면 어떤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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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똠비 2008/02/14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한바닥 쓰고 들어왔어요..^^

    저는 그 유명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도 문영이가 자기집 나왔다고 자랑한 부분만 봤을 따름이라 유홍준씨의 철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지만, 고궁에서 고기구워먹었다는 뉴스를 보고 살짝 부러워했던 기억이..^^;; 농담이구요, 뭐, 이제 다시 그의 책을 읽을 일이 있겠어요? 너무 상심마세요. 이제와 돌이켜보면, "답사 다니면서 일꾼들을 만날 때마다 담배 한 가치씩 주며 물어봤다"고 이야기 하는 그와,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주머니에 손꽂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환하게 웃으며 대책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는 그의 모습 사이에는 묘한 일관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네요.

    좀 다른 얘기지만, 전 "숭례문은 복원될 수 있지만 600여년 지켜온 가치는 복원될 수 없다"는 식의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서, 도무지 이 '가치'의 용법이 뭔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예컨대, 엄마가 돈을 억척같이 아끼거나 어떤 물건을 애지중지 하는 걸 보고 아버지는 돈 밖에 모른다니, 물질 만능이니 하면서 비난하시지만 실은 엄마가 아끼는 건 그 돈이나 물건을 만들어낸 노동이거든요. 그 노동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당신의 노동을 더 투자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근데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견주어 보자면 매우 어리석은 행위이고, 실제로도 얼마간 가치가 전도되는 물신화의 순간들이 있을 수도 있단 말이죠. 숭례문의 가치가 장인정신이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건 숭례문이 복원되면 복원되는 거라고 볼 수 있고, 뭐 아무리 진본에 가깝게 복원한다 해도 우리 조상들이 만들고 양녕대군이 현판 글씨를 쓴 그 숭례문이 아니다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이 경우에 '가치'는 진품명품의 '가치'겠군요.. 그럼 내가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거는 게 되겠지만..)결국 복원되지 못하는건, 혹은 바뀌는건, 600년 이상 보존했다는 '기록record'일 뿐이지 않은가 싶거든요.

    내가 무슨 얘길 할라고 그랬더라.. 어쨌든 그러나 사실은 제가 지금 쓰고있는 논문도 그렇고,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이 하는 일도 그렇고 , 위에 언급한 어리석은 울 엄마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밝혀서 그 행위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게 하는 그 '합리성'에 대한 크리틱을 시도하는 거라고 볼 수 있을텐데, 그렇다고 숭례문의 결코 복원되지 못할 가치 운운하는 건 무조건 엄마가 불쌍해! 하고 연민에 잠겨있는 거고... 엄마를 복원시켜드리면서 나와 엄마, 나와 아빠 사이의 윤리적 관계를 엄밀히 설정하지 않으면 유홍준씨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2. rlagur 2008/02/15 0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치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이야기인데요. 이것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지는 제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미술사를 반십년 이상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미술사를 선택한 것은 그것이 종합학문이라는 점에 마음이 들었어요. 한때는 이 공부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고요. 그 당시에 유홍준씨의 글이나 강연도 별 감흥없이 대하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당시에 순수하게 가치있다고 여겼던 것이 제도의 뒷받침을 받은 현실적 지지력이 있었던 것 같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무지하게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 일에 제 열정을 쏟지는 않거든요. 이미 시간 배분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더욱이 미술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것을 이야기하며 접근하는 사람을 곁눈질하며 보게되죠.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지요.
    어쨌든 당시에 생각한 것은 우리가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문화가 아닌 문화재라는 것이고 그것이 문화재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 상징의 일부라는 것이지요. 부족의 토템과 문화재가 얼마나 다를 지는 모르겠어요. 문화재를 통하여 민족국가의 구심체, 우리의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보는 태도는 우리 시대에 매우 보편적인 엽기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과연 문화재 이전에 그 내부의 가치 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화재 민족주의의 시대에 갖는 나의 고민입니다.

  3. yangyang 2008/02/15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전에 통화하고 여기에서 rlagur님의 글을 보고 순간 허걱 했습니다. 계속 여기에 들어오셨던 거구나라는 생각에, 한 동안 업뎃되지 않는 이 블로그 연합체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서요.
    남대문이 불타던 날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실시간으로 붕괴소식까지 듣게 되었던 저도 허망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인데, 다음날부터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면서 rlagur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의 허망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하는... 장례식과 같은 헌화 행렬이나 600년 된 조상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할아버지들의 울부짓음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이 할아버지들이 태안바다가 시커멓게 되었을 때 이렇게 개탄하였을까 그런 생각도 하였고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인지 모르겠지만, 수중에 200억이라는 돈밖에 없다면 남대문 복원이 아니라 태안 앞바다 복원에 써야한다는 게 제 생각이기는 합니다. 이것도 결국 가치의 문제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남대문을 보고 허망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라는 자문을 하다가, 백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몇년 전 몇 달 동안 열심히 찍었던 사진 파일이 완전히 사라진 걸 알게되었을 때의 허망함(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거든요. 그때의 당혹감이란... 흑흑)과 비슷한 건가, 그런 생각도 해보았구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남대문을 보면서 좋았던 건, 지금처럼 도로 한 복판에 남대문만 우두커니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위에 성벽이 쳐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남대문을 분주하게 오고가고 남대문 주변으로 假家(일종의 무허가 가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들이 있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흥정을 하고.. 이런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 남대문이 없었다면 서울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상상할 수 있었을까(물론 많은 사료들이 있기 때문에 상상할 수는 있겠지요), 남대문 남쪽으로 내려오면 예전에는 여기가 서울 밖이었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남대문을 오고갔던 사람들과 물자들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이런 느낌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 창문 밖으로 우연히 성곽을 보게 되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데요. 제주도에서 올라온 촌놈이라 그때 처음 서울의 성곽을 보게 되었던 거거든요. 서울이 성곽있는 수도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날 미술관을 방문했던 사람들끼리 성곽을 따라 걷기까지 했는데요, 가을풍경이 좋아서 그날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걸으면서 옛날 도성 안이라고 하는 곳을 바라보니 참으로 좁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경관과 집단기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갈 것 같아서,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정지하도록 하겠습니다. ^^

  4. 장정아 2008/02/16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1년만에 양양님과 소유권세미나를 하느라 rlagur님 글에 대한 답글이 늦었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고, 아직 너무 미약한 블로그인데 좀 부끄럽네요. 저도 사실 어제 숭례문 관련 기사들을 보다가, '국보1호'라는 게 마치 '가장 중요한 국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듯한데 그게 전혀 아니라 일제시대에 관리차원에서 편의상 붙인 행정상의 번호였을 뿐이라는 것, 그래서 이 번호에 대한 논란이 몇 년전 나왔을 때 유홍준 청장이 '국보1호'같은 번호를 없애도 좋을 듯하다고 했다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좀 허탈했습니다.
    저는 워낙 과문해서, 정말 그게 행정상의 번호인 걸 몰랐거든요. 바로 그 기사가 지적하듯, 이런 '번호'의 의미를 뻔히 알면서도 언론들이 마치 가장 중요한 국보가 타버린 듯이 "국보1호", "나라의 자존심이 무너졌다"고 한 선정주의적 보도의 아주 좋은 타겟이었던 거죠, 쩝.
    그러니 더더욱, 사실 국민들이 좀 언론의 지나친 플레이에 놀아난 듯한 느낌도 들고 묘했습니다.

    그렇지만, rlagur님의 말씀에는, 저는 사실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동감'은 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그게 분명히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모두 허망하다고 말해버리기에는, '민족주의'라고 말해버리기에는, 그런 애착 또는 집착의 '소중함'을 이제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건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인 듯합니다. 얼마 들진 않았지만.
    이론적으로 재단하고 분석하는 것의 쾌감, 희열도 여전히 좇고는 있지만, 그래서 '소유권'도 세미나하는 거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솔직히, <'민족주의'여도 좋다, 그런 애착이 없다면, 그렇게 마음을 기대는 곳이 없다면 사람같이 허약한 존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마음입니다.
    그게 때로는 웃기는 집착이요, 심지어 '만들어진' 애착이라는 것, 그것은 오직 국가 등에만 기여하는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그런 부분을 공부로는 계속 밝혀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그런 애착을 부정할 수 없다고, 나자신도 그런 애착들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인정합니다.

    또 양양님 말대로, 숭례문에 대해 제가 특히 마음아팠던 건 사실 그것 자체라기보다, 정말 사람들의 때가 묻어있는 공간 속에서 함께 숨쉬어온 것이기에 더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똠비님 글은 좀 어려워서, 음, 그러니까 -- 엄마를 복원시켜드리는 게, '600년' 운운하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가치를 복원시키는 것에 상응하는 비유가 아닌가요? 마치 거꾸로 인 듯해서 헷갈리네요.
    암튼 일단 잘 해석을 못한 채로 이야기하자면, 그 '가치'라는 게 뭘까, 그저 600년이라는 기록일 뿐 아닌가, 라고 하더라도 역시, 그리고 '진정한 진품'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역시 인류학자로서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래도 '가능한한 진품'에 대한 향수와 애착을, 어쩔 수 없이 이제 가지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부분이 집합기억에 대해 양양님이 정확히 읽어내주신 양가적 감정과도 연관됩니다.
    그래, 스타페리부두 따위 철거하는 게 도대체 무슨 대수냐, 그저 옛날 식민총독들이 홍콩 올 때 드나들던 부두일 뿐인데, 홍콩사람들이 배타고 왔다갔다 좀 했다손 치더라도, 그게 도대체 무슨 놈의 대단한 '집합기억'이라고, 그게 없으면 죽는다고, 생전 정치에 관심없던 젊은애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냐, --- 이 말이 맞습니다.
    그리고 너도나도 '집합기억' 운운하는 건 좀 염증이 납니다.
    그럼에도 저는, 사실, 그들이 그렇게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게 너무나 반갑고, 기쁘고,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리고 그런 건물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에서 인터뷰했던 민속전문가 펑지차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천진시에서 없어져가는 건물들을 살리기 위해,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강연하고, 자기 돈 들여서 죽어라고 사진찍고 다니고, 그렇게 해서 살려낸 건물들이 많다고 할 때에도 저는, 그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토도 달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억이, 애착이, 문화재니 뭐니 하는 것이, 사실 '진짜'도 아닌 건물들이, 다 허망한 것이라 하더라도, 웃기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밝혀내는 일을 한편 하면서도 저는, 그런 기억을, 애착을, '문화가 아닌 그저 문화재'에 대한 애착이라도, 이야기하고 외치고 호소하는 이들(그들 또한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을, 그래도 박수쳐주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이젠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자유로운 인간형'을 보고자 홍콩을 연구했던 사람으로서, 어째 이리 약해졌는지 참 --.

    • 똠비 2008/02/16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논리가 허접한 것을 '어렵다'고 포장해주시니 민망하군요..^^ 기본적으로는 언니가 해석하신 바가 맞죠. 근데, 엄마를 복원시키는 건 엄마가 궁극적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새겨서 아빠가 간과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밝히는건데, 600년 지켜온 가치는 복원될 수 없다고 땅을 치는 건, 언니가 지적했듯이 편의상 붙인 행정번호를 가지고 국보 1호가 불에 탔으니 우리 나라는 끝이다라고 호들갑떠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해서요. 이건 엄마를 복원시키려고 엄마를 박제시키는 행위 아니겠어요...뭐 그런 과잉이랄까 호들갑을 좀 경계하자는 취지였구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모든 attachment를 부정하는, '쿨'을 강요하는 논리가 겉으로 보는 것처럼 완전히 공평무사한 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언니도 모성애에 관련해서 말씀하셨지만,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양성 평등을 얘기하면서 여성들도 자유롭게 성을 즐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물론 매우 맞는 말이지만, 이게 마치 성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하면 진보적이지 않은 것처럼 사용되는 어떤 집단 속에서는 매우 억압적이고 공평하지 못한 순간과 결정들을 낳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5. rlagur 2008/02/16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자신을 분류하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됩니다. 그 중에서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는 한문이나 초서에 정통하다거나 전통을 연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간의 행적을 되돌아보아도 한문 그 자체를 공부하기 위하여 공부한 적이 없고 전통을 연구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역사를 연구한다면 그래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통을 연구한다고 하면 왜 그런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통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장정아님이 말씀하신 기억, 애착 등의 단어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용어들이 인간의 실존에 끼치는 영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종 불수의근과 같이 우리의 습관을 관할하는 숨은 신과 같은 존재인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더욱 결정적인 힘을 과시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신의 행패가 나의 뿌리없는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고약한 것을 여러번 목도한 뒤에는 그 신전에 있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미암은 것이지만요.
    현실 세계에서는 전통이 삶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삶을 파괴하였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전통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반성을 하지 않습니다. 반성이 이성의 영역이라서 동감의 축제 밖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휴머니즘의 외양을 쓴 그 정서는 거대한 성과 같아서 감히 접근조차 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 성에서 소외감을 느낀 많은 상처를 양산한 채 말입니다. 사실상 전통은 많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전통은 감성이 사라진 시대에 오히려 좁은 영역으로 감성을 내모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홍준의 글을 보면서 했던 생각인데 너무 오래되서 문맥이 맞지 않고 다 까먹은 것 같습니다. 당시는 중국에서 나온 반논어라는 책을 보면서 논어의 전통에 대해서 생각하던 때였고, 이탁오의 분서를 읽으면서 전통 속에서 죽어가던 인간들에 대하여 깊이 각성하던 때였습니다. 문화혁명 때의 한 홍위병이 다시 태어나 형장에서 베인 목 위에 달린 눈으로 떨어져 나간 자신의 잘려진 몸을 다시 되돌아 보았을 때의 허망감 같은 것을 깊이 느끼고 있던 터라서 지금까지도 이 세계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신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똠비 2008/02/16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있던 곳은 라구르님이 경험한 것과는 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이성과 인권의 이름 하에 오히려 코너로 몰리고 있거든요. 무반성이 전통이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마인드에 내재적인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민족주의나 국가나 전통에 대한 크리틱을 그에 대한 전반적이고 절대적인 부정으로 당연하다는 듯 이끄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물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6. 장정아 2008/02/16 0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아마 rlagur님과 저의 차이는, 개인적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부분이 클 것입니다. 선생님과 같은 경험을 했다면(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요) 그렇게 생각하시리란 것을, 백번 천번 이해합니다.
    또 선생님의 말씀 자체에도 많이 공감하고요.

    저자신은 사실, 몇 번의 계기들이 현재처럼 '나이브해지고' '약해진' 저를 만든 듯합니다.
    그 중 하나는, 국가나 민족 따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아 자유로울 듯했던 홍콩인들이 사실은 엄청나게 외로워하고 있음을, 마음 줄 곳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있으며, 그걸 못 찾아서 쇼핑과 해외여행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뿌리가 없다'고 자조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았던 경험일 것이고요,
    또, 이건 직접 관련은 없을지 모르지만, 최근 몇 년간 개인적으로 겪은 일들이 저를 많이 겸허하게 만든 듯합니다. 모성애 신화를 비웃고, 애는 아무렇게나 밥만 먹고 크기만 하면 된다고, "엄마들이여, 애 껴안고 살다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밖으로 뛰쳐나가 당신들의 인생을 살아라"라고 외치고 다니던 제가, 정말 상처받은 짐승의 모습이 되어 울부짖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몇 년전 한번 크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옳은' 이야기라고 해서 함부로 할 게 아니구나, '아이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내가 너무나 싫어하고(지금도 싫어하고) 가증스러워했던, 뭔가 거대한 음모가 있어보였던 짜증나는 이야기에도, 나름의 진실이 있었구나, 그 진실을 부정하려 하다가 내가, 내 아이를 잡을 뻔 했구나 --.

    최근에도, 결코 '수준높은 소설'로 인정할 수 없었던 한 여류작가의 자전소설을 읽으며, 눈물을 철철 흘리며 저의 상처를 치유받으며 저는 또한번 무릎을 꿇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내가 이렇게 당신의 소설에서 살아갈 힘을 얻으면서, 그동안 당신의 소설을 비웃어서 미안하다고 --.
    감정적이고, 유치할 수도 있는 글이었지만, 저에게는, 세상 그 어느 고전보다도 커다란 치유의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하며 저는 좀더, '옳은 말'보다 '마음'을 생각하게 된 듯합니다.
    뻔한 말이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부분의 진실과 마음을, 정말 억압적인 담론이더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부분의 진실과 마음을 --.

    물론, 선생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전통'의 기가 막힌 억압과 폭력에 대해서는, 저도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있고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저의 경험과 성향이, 그 쪽보다는 다른 쪽과 緣이 닿아, 이렇게 저는 '그래도, 그래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사실 중국을 전공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런 '집단','전통','국가','위대한 문화유산' 등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 엄청난 재앙과 무서운 폭력에도 불구하고, -- 그 속에 있는 일말의 진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

    이번에도 중국에서 불고 있는 '무형문화유산' 보호붐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서 논문을 썼지만, 사실 저는 관련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보호붐이 얼마나 웃긴 형태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제가 신랄하게 썼지만(논문이 나오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는 내심,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보호붐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사람들이 그래도 무언가에 마음을 둘 수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대도시에서 춘절 때 폭죽을 허용하는 것이 허용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

    저같은 사람이 사실 위험한 거겠죠, 쩝.

  7. 양양 2008/02/16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rlagur님의 글을 읽다보니 <냉정과 열정 사이: 블루>에 나왔던 한 대목이 생각이 나서 몇 자 끄적어봅니다. 이 소설의 주 무대 중 하나가 피렌체라는 도시인데, 중세미술 복원사인 주인공의 스승이 피렌체라는 도시에 대해서 주인공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피렌체는 과거로 역행하는 거리이고 중세시대부터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이고, 역사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거리라는... 근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직업이 바로 고미술 복원사라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잔잔한 울림이랄까, 뭐 그런데요.
    이 대목을 생각해내기 위해 책을 다서 꺼내서 넘기다보니, 또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일본에서는 문화재 복원 작업을 할 때 얼마나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하는가를 중시하는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멀리서 보았을 때 위화감이 없도록 색칠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어디가 복원되었는지, 누가 보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야한다고 하네요.
    잠깐 쉬어가시라고, 적어보았습니다. ^^

  8. 장정아 2008/02/16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고, 다들 잠은 안 주무시고.. ^ ^ 문화재복원 이야기는 재밌네요. 저는 이제 잡니다.

  9. CattivoMaestro 2008/02/16 1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들 진지하게 말씀들 나누셔서.. 구경꾼 머리가 좀 너무 아픈데요. ^^ 이게 글이 양쪽으로 압축된 것 같아서 더 그런거 같기도 하고...

    저는 사실 전통이랄지 문화재랄지 그것들이 가져왔다고 상상되거나, 가질 수 있다고 추정되는 "가치"랄지에 대해서 시니컬 인간인데요. 대개 사용가치나 교환가치와 떼놓을려는 물신화의 수준에서 논의가 되는 데다가, 내러티브만으로 보자면, 결국 대개 어떤 "희생"을 성스럽게 혹은 불가해하게 만들고 결국 "가치"의 인정만을 강요/내재화하는 가치론이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경험의 가치 같은 것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도 싶구요.

    다른 얘깁니다만, 엇그제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박노해가 썼다는 "내마음의 숭례문"인가 하는 시를 보고 쓰러질 뻔 했었습니다. 안보신분들 많겠지만, 시민 박기평이 썼으면 그냥 서울시민 백일장이랄지, 중고생이 썼으면 "야쿠르트 건강 백일장"수준에서 입선정도는 할 작품이던데요. 하여간 제 마음엔 "12시가 되며는 문을 닫는다"는 남대문은 있어도 위풍당당 숭례문이 없는데다가, 도통 "600년을 지켜 온 이땅의 자존심"이 어째 숭례문인지 600년은 무슨 이땅과 성문한짝의 관계를 오늘날 삶과 등가로 만들어버리는 산수인지 이해가 안가더군요.
    한가지 이해가 더 안되던 것은 복원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말해버리는 것 중에 하나가 "시간은 돈주고 못 산다"같은 것인데요. 다른 건 몰라도 자본주의는 "시간"을 교환가치로 전환하고 결국 화폐로 표시하는 마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게 맑스 이론의 서장인데요. 그래서 "노동 시간" 혹은 "생의 시간"을 아무 의미없게 만들어버리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다는 것이고. 역설적으로 복원하면 숭례문에 새시간을 부여할수 있다고 다들 상상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또 이야기가 되는 것도 같고....사실 600년 이란 "건축물의 시간"을 "전통의 시간"으로 바꾸어 가치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더군요. "죽어버린 시간"은 그러니까 애초에 죽어있던 시간인 것이고, 그럿이야 말로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복원안되는 시간 아니겠습니까? 멜랑꼴리아가 있다면 그런것일텐데 그자리를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너무 빨리 들어와 장악하는 법을 터특한지라....

    숭례문 짓다가 채찍맞아 죽거나 돌에 깔려죽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적어도 그런 "과정"을 추억할 브레이히트적인 감수성이 스며들 자리 같은 건 없다는게 좀 안타깝던데... 그랬거나 어쨌거나 그 시를 읽고서 적어도 "노해"라는 이름으론 그런 글은 안썼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닭살"은 민족주의에나 들어붙어야지 "노동해방"에 붙어야 쓰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고, 사실 제가 특별히 관심이 가던 것은 어째 그 노인네가 불을 질러버렸을까 불지르고 동네에서 고스톱치는 여유는 어디서 생겼을까, 경찰서에서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그 정치성은 또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던데요. 그래도 나름 윤리적 가치에 번민하셔서, 기차 테러는 안하셨다니...

    그냥 지나가다 말씀들이 재밌어서 저도 살짝... ^^

    아 참... 양양님은 저랑 비슷한 레퍼런스를 떠올리셨네요. 하하.. 저도 그 냉정과 열정사이가 복원논의를 보면서 살짝 떠올랐었는데. 근데 그게 결국은 이탈리안 복원술을 삶에 부가하자 그런 교훈적 메시지가 아니었나요? ^^

    그리고 한가지만 더 저는 잘 모르지만, 복원은 아니더라도 우리내 "중건"사를 들었던 기억으론, 그때마다 논쟁이 있었고, 적어도 백성들을 괴롭히지는 않아야한다는 파도 있었다는데, 우리 명박씨는 모금을 어쩌자고 바로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고소영" 왕조 체제를 꿈꾸셨나? ^^

    • 양양 2008/02/16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훈적 메세지 맞습니다. ^^ 나도 그 교훈에 동감하였고요. 근데 어차피 과거의 것이 그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까놓고 시간의 지층을 물건에 새기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게 아닐까 하는 게 제 생각이지요. 시간이 흐르는데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현경이 언니의 강추로 제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잉글랜드 풍경의 역사>라는 책인데요. 50년대에 나온 책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쪽팔릴 정도로, 제가 경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풍부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잉글랜드 풍경을 '거듭 새긴 양피지본', 다시 말해 여러 세대가 각기 자신의 생활방식을 각인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들 선대의 흔적을 반쯤 지워버린 양피지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저자의 메타포는 산업사회 이전에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철거되지 않고 남아있던 남대문이라는 게 남대문시장과 서울역과 기타 등등 이런 현대의 장소들이 역사적 관성을 보여주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양피지의 흔적들이랄까, 그런 존재가 아닌가라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위해 모든 경관을 뒤집어버리는 현대사회에서 의도적으로라도 이런 흔적들 중 일부는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10. 양양 2008/02/16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 참, 논문 써야 하는데, 마저 못한 말이 생각 나서 자꾸 들어오게 되네요. 이게 두 달이 다 되어가는 감금 아닌 감금 생활에서 비롯되는 증상인 것 같아요.
    여기에 올려진 전통과 반전통에 대한 논의구도가 제가 깊은 생각 없이 인용했던 소설 제목인 열정과 냉정의 구도로 읽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읽는 분들도 다 느끼셨겠지만, 온도계를 갖다 댄다면, 정아 언니나 라구르님이나 CattivoMaestro님의 글에서 수은주가 치솟을 것 같거든요. CattivoMaestro님 글 보면서 여전히 꿈돌이이시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반민족주의나 반전통에 대한 논의들의 시작 역시 이론적인 난도질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현실 정치 지형, 내지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런 논의들을 이론적인 분석이 주는 쾌감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런 논의들 역시 제도화되면서 이론적인 재단의 잔치로 끝나버리는 게 작금의 현실이기도 하지만서두요.
    이젠 정말 잠 자기 전에 들어와야지, 다짐하면서, 꾸벅.

    • CattivoMaestro 2008/02/16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꿈돌이"는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였는데요.. ^^
      "호돌이"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감사~

      사실 저 앞 댓글에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 안되서 그냥 여기다 씁니다. 그 경관 때문에.... 다른데 경관과 기억에 대해서 댓글을 다셨던데... 저도 관심이 있는 부분이고 해서요.

      저는 그책 모르지만, "거듭새긴 양피지본"이라고 했다면, 제 견해는 "거듭새긴"이 경관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반쯤 지워진"이란 말은 좀 생각을 해봐야하겠지요. "지워진"과 "남겨진"사이에는 큰 갭이 있는 것 같기도 해서요. 사실 지워진의 경우에도 "과학주의자"들은 심지어 잔상효과를 들기도 합니다만, 심리학의 주류가 두뇌과학이 된지 오래니, 경관논의가 라식, 라섹술과 결합하지마란 법도 없겠지요. 사실 모든게 이미 사회적 과정으로써 또한 존재하기도 합니다만...
      참, 각 세대의 각자 생활방식이라는건 사실 반전통주의자들의 신화가 아닌가요? 전통주의자들은 그 반대의 "여전한" "남겨진" 생활방식들에 더 착목하는 것이고..
      지우는 것이 불필요할 때도 있지요. 그걸 남겨진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일라이트랄지 덮어쓰기 방식도 있으니까 저희도 합니다만, 사이드가 말한 것 처럼 "참조"로 뜯어내기도 하고 ""로 재배열도 하니까....

      지나친 일반화겠습니다만, 저는 "파괴"라는 어떤 윤리적 담론이 취약해지는 순간은 오늘날 우리사회가 기본적으로는 "남기는 싸움"이란 룰이 일반화된 사회라는 것을 간과할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자본주의 논리상 초과적으로 남기는 것이 항상 이슈인데 말이지요. 문제는 그것이 가지는 역설 초과적으로 남기기 위해서 미니멀해져야만 하는 어떤 조건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얼마간 상징이나 물신성이라는게 그 자리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고, 문짝이던 성벽이던 부분으로 "반쯤은 항상 없는" 것들 까지 대변하고,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위력을 선언하는 구조가 있는 것이고, 제가 몹시 불편해하는 것은 미니멀한 것이라도 남았다가 아니라, 그 사회동학자체인 것이지요. 삶들을 미니멀하게 만들어버리니 말이지요..숭례문은 이전에 매연 뒤집어쓰던 숭례문은 아니게 복원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신나를 뒤집어쓰기도 더 어려워지겠지만...

      "전도"를 생각한다면, 사실 이미 숭례문은 서울이란 "폴리스"의 통로에서 한번 그 의미가 이미 "전도"된 것이고 그것을 다시 이번에 "전도"되냐 혹은 "증식"의 순환으로 가냐는 것인데, 뭐 제가 보기엔 이미 "증식"의 순환에 들어와 있는 것이고, 그걸 "전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폭압적으로 자연화된 제도와 시스템 윤리가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왜냐면 저처럼 시니컬한 인간을 잠재적 흥인지문 방화범 정도로 생각하는 사회를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해서... ^^

      그래서 아마도 제 개인적인 취향같은 것이겠지만, 제 관심은 그러니까 불났는데 "아무렇게나 끌수 없어" 결국 폭삭 주저앉게 했던 소방관들이랄지, 불은 못 끄고 현판을 보물마냥 떼내 영웅이 된 소방관 스토랄지 등등이 가쉽거리로만 보기엔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도 싶었거든요. 사실 그순간에서야 남대문이 숭례문 되고 숭례문이 국보1호였다는게 확증되는 순간이었다고도 생각이 되고. 사망신고서에서야 존재는 개별로써 "특이성"을 갖게된다고 말하던 들뢰즈 말도 좀 생각이 나고

      "싸우나" 모델로 읽지 않아야한다는 말씀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냉탕에서 땀나는 제가 좀 우습습니다만..

  11. 양양 2008/02/17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요도 하셔라.
    직업윤리의 정립 차원이랄까(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런 계통 쪽에서 앞으로 직장을 구하게 될 것 같기고 하고, 사실, 몇 년 동안 해왔던 일이 이런 계통의 일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하고), 아니면 동시대인으로서 불타버린 ‘숭례문’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랄까, 그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면서 은근슬쩍 봉합한 문제를 여지없이 건드리시니...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CattivoMaestro님하고 언쟁이 붙게 되면 날이 새야 그 술자리를 파하게 되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였었지요. 나중엔 내가 체력이 달려 슬슬 피했지만...
    체력이 달리기 전에 한 마디 하고자 하는데요. 근대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기는 싸움’이란 룰이 일반화되었다면, 이는 ‘파괴’라는 것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 잡은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파리 코뮨 당시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시계탑을 부숴버린 일이었다거나, 볼셰비키 혁명에 적극 가담했던 러시아 미래주의자들이 반전통의 선두주자였다는 점 등등을 떠올려본다면, ‘파괴’라는 행위에서 혁명의 아우라를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단단한 것들을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는 것이 근대성의 속성이라고 누군가가 언급했던 것처럼,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조건은 ‘파괴’에 가까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근대성 운운한 이가 놓쳐버린 게 있다면, 근대성의 이면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들 중 일부를 고정시키려고 한다는 데 있겠지요. 그 고정의 결과는 인류학자들이 탈맥락화라고 말을 하기도 하는 ‘미니멀리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전통의 발명’ 논자들이 개입하고자 했던 것도 이 지점인 것이구요. 근대 이전에도 박물관이나 문화재와 유사한 것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박물관이나 문화재 등등은 과거를 열심히 지워가는 근대성의 또 다른 단면일 터인데, 이런 면에서 ‘남기는 싸움’이라는 것은 타당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일상화된 파괴 속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출발 자체가 싸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남기는 싸움’이란 룰의 일반화를 인정하는 것이 ‘파괴’에 대한 어떤 윤리적 담론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타이머신을 타고 조선에서 이 세계로 날라 온 누군가가 빌딩 숲 사이로 난 도로 한 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남대문을 보면서 이런 엽기가 어디 있나 하는 그런 느낌을 충분히 갖게 할 수도 있는, 어떤 문짝이나 성벽들을 ‘전통’이나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양산해내는 이 사회의 논리가 다시 일상의 삶 자체를 내몰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MB와 흥인지문의 잠재적 방화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시니컬리스트의 윤리를 구분해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것이지요.
    이 시대가 ‘남기는 싸움’이 일반화된 사회라면, 그리고 그 조건이 ‘파괴’의 일상성에 있다면,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남길 것인가라는 고민의 출발 지점도 여기서 부터가 아닌가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소박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남대문의 추억, 그런 걸 떠올리게 하는 흔적에 대한 이야기는 불타버린 남대문에서 느끼게 되는 나의 이 허망함이, 그리고 또 다른 여러 사람들이 느꼈을 허망함이 ‘상처 입은 600년 민족의 자존심’으로 비약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다시 말해 내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아니 또는 너무 가벼워서 어색하고 불편한 그런 옷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12. 장정아 2008/02/17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죠. 그 부분이 2002년 월드컵때 (양양님과도 한 번 나갔었지만 ^ ^) 그 뭔가 '가슴을 움직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으면서도, 또 막상 길거리에 뛰쳐나가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도저히 내 입에서 나오지 않던, 내 가슴 속의 '흥분'(분명히 국가주의적인 측면이 있는)을 그래도 '대-한-민-국'으로 정리해버리고 싶지 않던 마음과 비슷한 거겠죠.
    아이고, 너무 길어서 댓글만 프린트해서 애녀석들과 씨름하며 간신히 다 읽고 이제 잠깐 남기려 들어왔더니 그새 또 양양님이 --.
    저는 일단 간단히만 이야기하려고요.

    CattiveMaestro(이 필명 설명 좀 해주시죠)님의 글은, 어떤 부분은 좀 단순하고, 또 어떤 부분은 너무 어렵고, 그렇네요.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영어로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계신 건가요? 그렇다면 정말 엄청난데요.. ^ ^;
    위의 이야기에서 제가 동의하고 싶은 지점은 하나, 양양님의 이 지적입니다: <반민족주의나 반전통에 대한 논의들의 시작 역시 이론적인 난도질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현실정치지형, 내지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런 논의들을 이론적인 분석이 주는 쾌감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예, 전적으로 맞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다가 종종 이렇게 과도하게 단순화시켜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론적 분석' 대 '정서적 끌림'으로 이분화시키는 건 정말 단순무식한 이분법이겠죠.

    마에스트로님의 좀 복잡한 이야기들은 일단 조금 제가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몇 가지만.

    - 박노해는 이미 노동해방이 아니라 '인간'해방의 노선으로 들어선 것 아닌가요? 그런 점에선 매우 일관성이 있지요. 그리고 저는 물론, 더이상 박노해라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는 '쟁점'은 없다, 그저 <한때 '과격한' 노동해방을 외치던 사람이 오랜 수감생활 끝에 이제 나와서 따뜻한 '인간사랑'을 외치고 있다>는 너무나 진부한 내러티브를 몸으로 체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즉 우리 사회에서 부과되고 있는 이런 진부한 내러티브를 그자신도 부인하지 않고 기꺼이 거기에 맞게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글을 더이상 읽고 싶은 마음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사는 삶 자체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참 웃긴 짓이어도, 자기로서는 실존적으로,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면서 비로소 행복할 수도 있는 거라고..

    - 시간에 대한 마에스트로님의 논의는, 물론 옳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전통'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죠? 아무리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Invention of Tradition>이 우리의 개론교과서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마에스트로님이 정확히 그런 시각을 가지고 한 사회의 전통이나 문화에 대해 분석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지, 저로서는 잘 그림이 그려지지 않네요. (이 부분에서, 양양님의 바로위 댓글을 자세히 읽고 저도 다시 이야기해야 할 듯합니다)

    - 사족이지만, 그 방화범이 '노무현때문'이라 했다고 해서 그걸 '정치성'이라 부르는 건 좀 너무 나이브한 것 아닌가요? 다른 부분에선 그렇게 엄격하신 분이.. ^ ^;

    암튼 이야기하다 보니, 이 논의에 누구못지않게 열심히 참여하고 싶어할 듯한 mook님이 생각나네요. 이걸 보고는 있는지. 다들 가까이 있었다면, 한번 모여서 세미나도 하고, 실컷 술자리 가지며 싸우기도 하고, 또 다음번 세미나를 기약하고, 그랬을 텐데..
    역시 물리적 거리는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21세기이건 뭐건, 정말 도저히 그건 대체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최근 A대에 계시던 어떤 분이 B대에 계시는 분과 함께 의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B대로 옮기셨다는 것도 백번천번 이해가 갑니다.

  13. rlagur 2008/02/17 0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전통에 대한 저의 생각이 단견이었다는 생각을 살짝 하게 되는데요. 결국 문제는 전통과 반전통에 대한 논의가 아니었어요. 결국 전통의 헤게모니가 문제였다는 생각이 드는 데요.
    제 정신으로는 결코 방화를 한 그 사람에게 동조할 수는 없지만, 고백하자면 제가 지금보다 한창 힘들었을 때 방화를 결심한 적이 있었어요. 대체로 그 이유라는 것이 그 사람처럼 사회에 대한 불만이었어요. 갖은 상상을 다했죠. 분노가 녹은 신나를 구해서 사람들이 모두 귀중히 여기는 무엇인가를 다 태워버리고 싶었어요. 겨우 참아나가던 중 어느 영화에선가 자기 지도 교수 집에 방화를 하였다가 취조를 받는 대학원생이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영화를 본 뒤에 왠일인지 방화에 대한 충동이 없어졌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것은 이성이 아니었어요. 문화의 힘이었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그 이후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었어요. 삶의 길이 막힌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변수는 무모하지만 그래도 순수한 면이 있어요. 그 아저씨. 사실 나는 이해가 되요. 확 싸질러 버리고 나도 죽겠다는 마음 이해가 되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에요. 그러나 그에게 아무도 동조하지 않죠. 그게 이성이죠. 그의 행위에도 전통은 있을 것이에요. 억울함의 전통. 나는 그 전통을 바라보기 보다는 이미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그를 마음 속에서 처단한 것이죠. 내가 언제 분노를 갖고 있었냐는 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늘 스스로를 가소롭게 생각합니다.

  14. CattivoMaestro 2008/02/17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체력도 지력도 쇠퇴한지라 애초에 끼어들지 말았어야 하는데..^^

    rlagur 님의 이야기와 이제까지 이야기를 쭉 다시 보면서, 생각이 든것은, 기회가 된다면 모두들 한번 "반달리즘"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를 해 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대부분 윤리적 잣대, 그리고 요즘은 UN, 유네스코같은데 까지 국제법적으로 개입 가능한 자리가 되었으니까요. 숭례문이 "월드 해리티지"는 아니어서 장애가 있겠습니다만..^^
    어쨌던 미국이 아프칸 전쟁 할 때, 탈레반 "애마장수"들이 "간다라 불상"이던가를 파괴했다고 하는 사실이 "여자들을 채찍으로 친다더라"와 더불어 상당부분 국제적 정당성을 이끌어냈었지요. 또, 이라크 공습할 때는 미국 학자들이 바빌론 유적과 박물관 지도를 국방부에 전달했다던가 해서 "파괴를 막는" 노력을 했다던가 하는 기사가 생각이 나는데, 사람은 죽어도 문화재는 살리자는 그 "문화인"들은 도대체 누굴까 심장이 벌렁거리다가, 그런 딜레마가 환경운동이나 어쨌든 대체로 제가 평가하기엔 "펀더멘탈리스트"들이 다들 경험할 문제겠구나 하고 말았습니다.
    걸프전 이후에 사실 이라크에서는 이미 "굶주린 민중"들에 의한 파괴, 도굴등이 상당했다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장정아님의 최근 글을 읽다가 들었던 생각 중의 하나가, "홍위병"에 의한 "문화재 파괴" 문제랄까 그런 "파괴 전통"이랄까는 어찌 처리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던 생각도 나네요... "반달리스트"들 문제가 근대적인 정치담론에서 좌파던 우파던, 자본가던 노동자던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는 어떤 정치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같습니다.

    아.. 그리고 짧은 변명입니다만...
    원론적인 이야깁니다만, 저는 "전통"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 이전에 전통을 "왜 이야기해야하는가"가 좀 더 중요한 고민이 아닌가 싶은데요. 제가 "전통"을 이야기 하지 않겠다던지 생계에 활용하지 않겠다던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말장난 같습니다만, 여전히 "전"하고 "통"하는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인류학적 과제이겠지요. 다만 말그대로 "belonging" 수준의 애정이랄까, 어쩔수없이 선형화되어 포섭될 "계보"랄지등엔 제가 좀 갸우뚱하는 것이구요. 이건 어쩌면 유홍준 말마따나 제가 "사랑"이 부족해서 잘 안 보이는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랑을 "강요"하는 체제같은 것이 마냥 사랑스럽지마는 않아서... ^^
    그리고 그 노인의 "노무현 99% 책임론"은 우스꽝스러운 형태지만, 나름 "정치적 의미" 생산이란 문제까지 "계산"했다는 점에서 그리 불렀던 것입니다. 윤리란 항상 정치적 문제다라고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비극을 희극으로 단방에 만드는 것도 같고... ^^

    잊을 뻔 했는데요. 부끄럽게 물어보시니. ^^;;
    까띠보 마에스트로는 그냥 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 도당 같은 죄인을 부르는 말이었다는데요. 그후로 이탈리아에서는 몇번 더 등장했었지요. "방화"를 사주하고, "파괴"를 사주하고, "분란"을 조장한다고 단죄되던 마에스트로들의 전통이랄까 그런것이 있다길래.. 좋아보이기도 하고 "좋은" 마에스트로가 되기는 애초에 글러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

    에고 "말이 고팠던 모양"입니다. 제 할일도 안하면서 저도 자꾸 들어오게 되는데요.. ^^

    • 똠비 2008/02/17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두 궁금했던 까띠보 마에스트로의 비밀이 이제 밝혀졌군요.. 그럼 까띠보 마에스트로님을 줄여서 부르려면 마에스트로 보다는 까띠보가 낫겠네요. (까띠보의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맥락상 형용모순인것 같고, 여기에 더 방점이 찍히는 듯 해서..) 마에스트로라고 하면 stainless steel, 즉 때안타는 철이 스뎅(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웃기는 상황이 되겠네요..^^
      앗, 다시 생각해보니 까띠보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마에스트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마에스트로에 더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이름 쓸거면서 '왜냐면 저처럼 시니컬한 인간을 잠재적 흥인지문 방화범 정도로 생각하는 사회를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해서... ^^'라는 멘트는 좀...ㅋㅋㅋㅋ

  15. 양양 2008/02/17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구르님의 댓글에 숙연해지기는 했지만... 사실 노무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었거든요. 그 아저씨에게도 억울하고 절박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사정마저도 코미디로 만들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요즘 때아니게 남대문 주변의 노숙자들이 '잠재적 방화범'으로 몰려서 고초를 겪고 있다고 하는데, 노숙자들이 남대문에서 자다가 그런 일이 벌여졌다면, 혹은 남대문에서 자지 못하게 해서 열 받아서 불을 질렀다면, 이 아저씨에게 보냈던 실소는 감히 던지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아저씨의 잘 계산된 행동은 뭐랄까, 너랑 나랑 같이 죽자 식의 그런 절박함이랄까, 그런 것하고는 거리를 느끼게 한다는 게, 제 솔직한 고백입니다.
    직업윤리 운운했던 건, 이제까지 내가 참여한 문화재지표조사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닌데, 스스로 확실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구나라는 자성 차원에서 한 것입니다. 저는 사실 지표조사를 제 자료를 챙기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는 측면이 다분히 있는지라, 어떤 걸 조사하고 무엇을 남겨야 한다고 제안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넘어갔었거든요. “종합의견”이란 마지막 제안 부분은 다른 사람이 쓰는 경우도 많았고, 또 웬만하면 저는 쓰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하는 민속이라는 분야가 고건축이나 고고학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개발 계획을 변경하거나 뒤집기도 하는 그런 제안서가 나올 일은 거의 없는데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야 하는가, 또 까띠보님의 말을 빌어서 왜 남기는가(눈치 채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의식적으로 ‘전통’이나 ‘숭례문’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하였는데요, ‘전통’이란 이름이 아닌 다른 지평 내지는 가치를 가지고 역사나 민속, 그리고 의도적으로 남기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숭례문이란 표현을 쓰지 않은 건, 까띠보님 말대로, 남대문이 사형선고를 받은 다음에야 숭례문이 된 것 아니냐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와 같은 문제를 래디컬한 수준에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작업의 편의에 편승해서 슬을쩍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16. 장정아 2008/02/19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쉬어가기' 코너가 너무 무거워져서 점점 부담스럽네요. ^ ^;
    '전통'을 왜 이야기해야 하는가.. 예, 그 부분에서 저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기대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이 짧은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문제점과 역설이 들어가있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그것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 아니겠죠.
    과연 사람들이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 아니겠죠.
    과연 그것이 정말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가 - 좀 아니겠죠.
    어디까지가 '전통'이냐, 계속 바뀌어온 '한복'이 도대체 한국전통옷이냐, 이런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들은 차치하고라도요.

    그러나, 그러나, 정말 '국가'로 나뉘어져있는 현대 정치세계의 한계, 문제점, 폭력, 전통과 문화란 이름의 가증스러운 폭력들까지 고려하더라도.. 정말 그걸 완전히 부정할 수 있는가, 저로서는 아닙니다. 어떻게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부터는, 각자 관심을 가지는 영역의 차이가 되겠죠.

    까띠보님이 말씀하신, <홍위병에 의한 문화재 파괴랄까 그런 파괴 전통은 어찌 처리되고 있을까> 하는 부분은 제게 아주 감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아직 찾아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런 부분에 대해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논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전통'이나 '문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파괴된' 것들(학문,문화,자존심,인간성 등)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컸겠죠..
    이런 부분 연구도 가능하겠네요.
    그렇지만, 중국인이 아닌 제가 아마 함부로 이야기할 순 없겠죠.
    홍콩에 대해 발표할 때 가끔 홍콩인들이 제게 감정적으로 던지던 말, "당신이 홍콩에 대해 뭘 알고 비판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겪어왔는지 당신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중국인 이주민을 안 받아준 걸 비판하는가?" 이런 소리나 듣겠죠..
    아, 그런 경험은 사실 너무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까띠보님은 왜 체력도 지력도 쇠퇴했나요?
    그 때 미국에서 봤을 때는 너무나 유학생활을 활기차게 잘 하고 있어보였는데.
    다들 그렇게 지치고 그러지 마시고, 제발 힘냅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