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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曾杜財, 자칭 '구룡황제(九龍皇帝)'
생년월일: 1921년 11월 12일
출생지: 중국 광동성
가족: 부인, 4남4녀
직업: 농부, 방직공장 노동자, 공사장 노동자, 쓰레기수집처 관리원
2007년 7월 15일, 한 홍콩인의 죽음에 언론들은 일제히 '황제의 서거(駕崩)'란 표현을 쓰며 그를 애도했다.
홍콩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그의 글씨를 본 적 있는 '구룡황제' 曾杜財는, 원래 농부였으나 식민정부에 의해 땅을 빼았겼다. 그리고는 한번 고향에 갔다가 족보를 뒤져보고는, 자신이 살던 구룡(현재의 홍콩을 이루고 있는 지역 중 섬쪽 말고 중국본토와 붙어있는 부분) 지역 일대가 본래 영국에 할양되기 전 왕이 그의 조상에게 하사했던 땅임을 발견하고는, 그 다음부터 자신을 '황제'라 칭하면서 여기저기(길거리의 온갖 기둥, 쓰레기통, 벽 등에) 글씨를 쓰고 다니면서 '주권'을 선포하였다.
쓰레기수집처 관리원을 할 때 수백 파운드 무게의 쓰레기통에 깔려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으나,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그의 글씨쓰기는 계속되었다.
'공공지역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매번 경찰에 잡혀가 "안 가본 경찰서가 없고", 최근까지도 홍콩정부는 계속 청소부를 시켜 그의 글씨를 지웠다. 경찰과 싸울 때면 그는 손수 만든 '황제' 신분증을 꺼내보이곤 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으나, 2002년 마지막 법정심리 때 자신이 쓴 글씨임을 인정하여 벌금 500홍콩달러(한국돈 약 65,000원)를 물었다.
한번은 어느 여자 區의원이 그에게 공공장소를 더럽히지 않는 게 좋잖냐고 하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후여, 그럼 나한테 글씨쓸 공간을 좀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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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유명해지면서, 지인 劉健威의 도움으로 1997년 그의 평생 소원인 '길거리 전시회'를 열었고, 그 해 홍콩의 디자이너가 그의 글씨를 의상 디자인에도 차용했다.
200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홍콩인 최초로 초청받았다.
2004년에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글씨가 5.5만 홍콩달러(약7백만원)에 팔렸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홍콩에서 그의 글씨는 계속 청소부들에 의해 지워졌다.
그리고 그는 정부의 생계수당으로 연명하며, 아주 낡고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홀로 살다가 말년에는 양로원에 들어가 외로이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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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국회의원 李卓人은, 그가 바로 홍콩의 풀뿌리문화를 대표한다고 여겨, 그가 있는 양로원까지 찾아가 그에게 <직선을 쟁취하자, 정치를 인민에게 돌려달라>는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유명세를 타고 광고를 세 개 찍었는데, 광고료는 처음엔 2천 홍콩달러(약35만원)이다가 크게 올라 나중엔 7천 홍콩달러(약85만원)까지 받았다.
그러나 홍콩 사회복지부에서 이걸 알고는, 생계수당을 받는 사람으로서 수입이 제한규정보다 많다면서, 그에게 주는 수당에서 7천 홍콩달러를 깎았다.
그 후 그는 영화에 출연할 때도 단1원도 받지 않았다.
그는,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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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망 후에도 홍콩정부가 그의 글씨를 지우라고 시켰다며 어느 직원이 방송에 제보해왔고, 정부측에 확인하자 정부는 부인하며, 그러나 남아있는 글씨들을 어떻게 할지 아직 못 정했다고 대답했다.
정신병자라며 평생 손가락질받던 그의 죽음에, 홍콩 언론들은 황제의 죽음에만 쓰는 '駕崩'이란 표현을 썼고, 요즘의 '집합기억' 붐 속에서 그의 글씨는 홍콩의 소중한 '집합기억'으로 추억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전하는 홍콩TV뉴스: www.youtube.com/watch?v=3t0-lHkwTes
어떤 홍콩네티즌이 만든, 그를 애도하는 노래와 동영상:
http://hk.youtube.com/watch?v=DRZTE6DYZO0&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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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처음으로 댓글을 다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군요. 항상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으로 댓글을 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멘트를 달게 되는 것 같아요.^^ 카테고리가 많은데, 꼭꼭 잘 채워가길 바랍니다. (본인이 블로그를 일 년 채 방치하고 있는 입장에서 참 민망한 인사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리고 처음 글도 그렇고 이 글도 그렇고 집합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유권이라는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논문 쓰는 중간중간에 들릴게요.
양양 반가워, 논문 잘 쓰거라..!
언니 블로그 문 여신거 축하드려요! 심심할때 들어와볼 곳이 또 생겼네..ㅎㅎ 저는 왠일인지 제 블로그에 접속이 안되서 만들어 놓기만 하고 일년 넘게 글 한개도 못올리고 있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에 나왔을것만 같은 이야기네요. 근데, 지금 홍콩 언론에서 황제 취급을 해주는 게 진지하게 그러는 건가요? 물론 죽은 사람을 조롱하지는 않겠지만...정말 그가 주장한대로 홍콩이 그의 것이었는데 정당하지 않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건지(아니겠지요..^^;;;), 아니면 그를 매개로 뭔가 다른 걸 기억/기념/추모하려는 건지... 작금의 '집합기억 유행' 현상에 과장이나 왜곡이 있다면 혹시 어떤 다른 표현되지 못하는 것 때문이 아닌지가 궁금해지는데요.. 정아언니의 다음 글도 기대해봅니다..!^^
첫 댓글 달아놓고 잠시 쉴 겸 다시 들어와보니 똠비님이 그새 다녀가셨군요. 똠비님도 반가워. 그대도 논문 열심히 쓰시게. 나는 2학기 심사를 목표로 1월부터 논문쓰기에 돌입했지만 1월말에 벌써 한 풀 꺾이고 지금이야 다시 재가동 시작중일세. (남의 블로그에 와서 내 근황 남기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네^^)
언젠가 낙장불입님과 블로그에 남겨진 댓글들을 보며, 참 사람의 스타일이라는 게 무언지,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누가 쓴 댓글인지 알 수 있다는 등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똠비님의 댓글을 보니, 똠비님은 수시로 포지션를 바꾸는 수퍼보드를 탄 손오공같다는 낙장불입님의 평이 생각이 나네요.
똠비님의 마지막 멘트가 인상적이어서 저도 몇 글자 끄적이게 되는데요. 사실 집합기억이란 문제가 몇 년 동안 제 사고 내에 없었기 때문인지, 구룡황제와 관련해서 집합기억이라는 말이 운위되는 게 생경하게 느껴지면서 이 말이 정말 홍콩에서 유행은 유행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나는 구룡황제 글을 읽으면서 공공지역에 대한 낙서와 이 때문에 경찰과 계속하여 씨름을 벌였다는 대목에 먼저 눈길이 갔거든요. 물론 구룡황제가 공공지역에 대한 낙서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건 '기억'이란 부분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집합기억 붐 속에서 어떤 시각으로 이 소용돌이를 바라볼 것인가, 똠비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용돌이 안에서 같이 요동하면서 이 사태에 접근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고, 밖에서 다른 시각으로 이 소용돌이를 횡단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슨 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유권 이야기를 했던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고요. 소유권은 협소한 것 같고, 권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과학계의 권력론 과잉에 대해 최근 권리론을 화두로 꺼내고 있는 분이 주위에 계신데, 저의 짧은 언어로 썰을 길게 풀 수도 없고... 그렇지만, 내부에서 같이 요동하면서 돌파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모두들 너무 반갑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홍콩에서 황제 취급을 해주는 건, 물론 '진지하게' 그러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생전에 한번도 그에게 인정해주지 않았던 칭호를, 이젠 그에 대한 미안함과 추모의 마음으로 붙여주는 거죠, 따옴표를 붙여서 --.
집합기억은 분명 과잉의 현상이 있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있습니다. 제가 일단 주목하는 것은, 그래도 홍콩인들이, 그동안 자기들의 정체성을 단지 <중국 본토와의 차이>에 기반하여 주장하던(제 박사논문에서 이야기했듯) 데서 벗어나,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자기들의 기억, 자기들의 스토리에 기반하여 <우리 홍콩>이라는 것을 positive 하게 제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그 점에서 사실 저는 매우 반갑습니다.
똠비와 양양이 이야기한 것들 모두, 제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권리, 이런 쪽에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요. 역시 -- 블로그를 미약하나마 개설하길 잘했네요.
장정아 선생님 정성이 가득한 메일 잘 받았습니다. 제 책 몇군데에서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 제대로 했는지 두렵네요. 선생님이 이제 긴 동면을 끝내고 용트림을 하시는군요. 첫 작품 '구룡황제' 잘보았습니다. 홍콩 길거리에서 황제의 글씨를 많이 접했던지라 붕어소식에 잠시 흘러간 시간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요-- 선생님 말씀대로 가끔 놀러오지요^^
방명록도 좀 봐주세요, 언니!^^
유선생님, 감사합니다. '긴 동면 끝 용트림'이란 말씀이 엄청 부담스럽네요, 용트림 제대로 해야 되는데, 하다가 또 동면하면 어쩔지 --.
생각해보니, 최근에 memory와 관련하여 읽은 책이 있었답니다. Landscape, Memory, and History란 제목의 책인데요, 에디팅한 책인지라 깊이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서론과 논문 한 편만 읽고, 또 다른 논문 한 편은 발제만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단정적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논문 대상이 과거에 만들어진 지형지물과 관계된 것이라, Landscape과 History를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이 책에 관심을 가졌는데, 읽어보니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었어요. 제목도 <경관, 기억, 역사>라기보다는 <경관, 기억, 정체성>이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두 키워드의 연결은 이미 익숙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논자들이 경관이란 부분을 끌어들이는 것은 앤더슨의 책에 나오는 "무명용사의 비"와 같은 일종의 기억의 매개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 책의 논자들은 정체성과 관련해서 경관이라는 개념이 주는 시사점은 특정 공동체의 바운더리에 동형적으로 붙박혀 있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강하게 장소성에 고착되는 정체성의 형성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서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관이라는 개념 내에 있는 지각적인 측면(언표화되지 못할지라도 이미지로 각인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은 기억의 주관적인 측면(같은 풍경을 똑같이 화폭에 그리는 화가들이 없는 것처럼)과 상호주관적인 측면(지각의 대상은 존재한다는 점에서)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며, 집합 기억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획일화되지는 않는(지각화된 이미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억과 정체성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논자들은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글에 달린 댓글에서 저는 왕가위 영화나 첨밀밀에 나오는 홍콩을 떠올렸고, 그러고보니 첫 번째 글이나 여기 글이나 경관적인 측면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할 때 모임에 나온 선생님들이 책에 실린 대상 자체가 시골이거나 부족 사회여서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