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의 요즘 최고의 화두는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 集體回憶)이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있었던 스타페리 부두의 종탑 철거(49년 역사를 지닌)가 몇 가지 우연한 계기로 갑자기 관심을 끌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홍콩에 대한 기억들"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애도하게 되었고, <무차별적 철거를 통한 발전>이라는 홍콩정부의 모델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정치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시위를 싫어하던 젊은이들조차 종탑철거반대운동에 뛰어들어 부두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철거를 몸으로 막으면서, 이제 드디어 "새로운 사회운동"이 홍콩에 도래했다는 평론가들의 흥분에 찬 논평이 쏟아져나왔다.
(이 젊은이 중 한 명은, 몇 년 전 홍콩에서 있었던 한국 농민들의 FTA 반대시위를 보면서 처음으로 '새로운 방식의 정치운동'에 눈을 떴다고 인터뷰에서 고백한다. 시위라고는 신물이 나고 싫었던 그에게, 삼보일배, 물에 뛰어들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주장을 전달하는 한국 농민들의 시위는 신선했고, 아, 정치를, 반대를 이런 식으로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방에서 '집합기억 찾기' 붐이다.
그동안 우습게 보던 남루한 건물, 시장, 오래된 골목, 이런 것들이 '기억이 담겨있는 가치있는 유산'이라 주장되고, 철거에 반대하는 이들 대열에 국회의원, 학자들도 가세했다.
그리고 이런 곳들에는 전문가가 이끄는 때아닌 '현장답사' 붐이 일고 있다.
그런 와중에 홍콩의 한 문화계 인사(梁寶山)는 일갈한다.(明報 '世記'欄, 2007.3.22)
"서민들이 살던 지역들은 먼저 재개발에 의해 '더러운 지역'이 되어버리고, 그 다음엔 중산층들에 의해 '집합기억'이 되어버린다."
"왜 끊임없이 '박물관'을 만들고 '창의적 공간'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문화라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 도시는 점점, 생활이란 게 원래 신기할 게 없고 특별한 게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는가? 우리의 생활이 모두 topic 이 되어버린 다음, 우린 어디 가서 살 수 있겠는가?"
'집합기억' 운운이나 '문화 만들기'가 종종 야기하는 또다른 타자화라는 주제는 인류학에서 지극히 익숙한 주제이지만, <왜 우리는 삶이란 게 별 게 없음을 점점 못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이 또한 지극히 인류학적인 질문이라 하더라도, 참신했다.
'집합기억'을 운운하면서 그 속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얻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만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는.
마지막으로 흥미롭고도 씁쓸한 것 한 가지.
위의 필자는 말한다.
"정부는 삼쉬포(빈민가)에 '마사회 창의예술센터'를 만들고, 근처의 오래된 공공임대주택건물을 '임대주택(公屋)박물관'으로 만든다고 한다. 정부는 '삼쉬포 문화지대'를 만들려 한다. 북경의 798에 '마오 주석 만세'가 있듯, 여기에선 공공임대주택 기억을 차용하고 있다"고.
내가 몇 년 전 북경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살아있는 공간이라 느꼈던 798(따샨즈), 과거 마오시대 사회주의적 국가주도 발전의 상징이던 그 곳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의 생기넘치는 예술, 거기에 여전히 남아있는(일부러 더 뚜렷이 색칠한) '마오주석 만세'라는 글씨가, 이젠 너무나 재빨리 '생기'를 잃고 또하나의 전범이 되어, 홍콩에서는 정부주도의 문화지대 건설에 차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홍콩의 가장 아픈 기억인 공공임대주택(식민시대 열악한 사회기반의 상징, 나중에 별도의 글로 자세히 설명)은 이제 정부에 의해, 북경의 798과 같이 '과거'와 '기억'에 기반한 문화공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어버린다.
혁명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언제나, 빛나오르는 건 한 순간이요, 그것이 타인들에 의해 사랑받고 광범하게 영향을 미칠수록 '빛남'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반복되는, 그러나 지켜보는 것이 매번 슬픈 역설 --.
그리고, 그 '빛나오르는 순간'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그것을 같이 이야기하고 글로 쓰고 싶다고, 여기 있는 아수라장 사람들과 세미나하던 기억,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던 기억 ---.
* 사진설명.
- 첫번째사진: 철거되고 있는 스타페리부두 종탑.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새벽에 갑자기 철거를 강행했고, 부속들을 일단 폐허 속에 "보관"해두었다.
- 두번째사진: 스타페리부두에 이어 쟁점이 된 퀸즈피어(황후부두) 철거반대 농성장에 와서 격려하는 주윤발. "당신들이 만일 부두를 지켜낼 수 있다면, 당신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황후부두도 결국 철거되었다.
- 세번째사진: 가장 오래된 공공임대주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홍콩의 오래된 지역들(빈민가)> 관련 전시. 정부는 이 곳을 공공임대주택박물관으로 만들어 과거를 '기억'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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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전소 뉴스를 보다가 이 글을 보니 기분이 묘하네요..
저는 한여름 한낮에 몇시간 홍콩 골목길을 다녀본 게 전부라 그런지(남아공 가는 길에 비행기 갈아타면서 남는 시간에...), 그때 그 숨이 콱콱 막혔던 열기와 비좁음, 빽빽히 들어서 있는 건물들에 질렸던 기억이 생생해서, 저 철거가 혹은 저 보존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것이냐, 감소시킬 것이냐가 가장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살다보니...
언니의 글을 읽는 묘미 아니면 힘, 이도 아니면 난처함이라고 해야 할까.
사태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한편에 이와는 양가적인 열정 또는 집착이랄까, 어쨌든 언니의 아이러니한 감정이 집요하게 느껴진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도처에 넘처나는 집합기억에 대해 씁쓸함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어떤 기억의 끄트머리를 계속 붙잡고 싶어한다는... 화석화된 기억과 한때의 餘震이 이어지는 기억과의 차이 또는 경계는 무엇일까,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댓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뻐근하도록 고마운 건, 아마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겠죠. 제 글에서 저의 아이러니한 감정까지 읽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