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2-23일 워싱턴디씨의 브루킹스연구소에서는 <중국 중산층의 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많은 발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내용과 질문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진보적인가, 아닌가>, <중국 중산층이 과연 사회를 뒤흔들며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하겠는가 아니면 체제안정적인 역할에 안주하겠는가>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있어, 미국사회의 관심사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한국 한상진교수도 발표를 했는데, 한국의 계층관련 연구를 계속 하다가 중국과 비교해서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계속 써온 '중민' 개념을 여기에도 도입하였고, 그의 논지는:
<중국과 한국은 민본전통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중산층을 단일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중산층 내부를 쪼개어 '中民(Middling Grassroots)'과 '中産 主流(Propertied mainstream)'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그 중에서 '중민'은, 중국에서 나온 설문조사자료들을 분석해보니, 한국의 중민처럼 상당히 '민중(人民)중심적인(people-first)'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정부중심적인(government-first)' 태도와 구분되더라,
그러니 더이상 중산층 전체가 보수적이냐 아니냐를 이분법적으로 논하지 말자, 나는 그런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이렇게 중산층에 대한 이중구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실제로도 다른 대부분의 발표들이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있고 상당히 수준도 떨어지는 데 비해 이 발표는 그런 '이분법적 시각'을 지적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이 발표의 치명적 문제점은, 그가 '민중중심적' 태도의 근거로 든 모든 사례들(-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답한 면, 사회문제들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불만을 표시한 점 등)은 기존의 이분법적 틀인 '진보성'에도 그대로 똑같이 들어맞는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즉, 그가 '민본전통'으로 인한 '민중중심적 태도'를 밝혀냈다며 새롭게 드는 내용들이 사실은 기존의 틀로도 다 설명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민중중심적 태도와 진보성의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자신을 더 identify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보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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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cade 2009/10/15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젯밤에 읽었던 구절과 자장님의 질문이 공명하여 '웅웅' 울리는 듯 합니다.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이었는데요. (미국)학자들은 귀엽기도 하지. 자국민들이 국가보다 인민/민중에 더 스스로를 일치시키는지 한번 조사해보시지. 확실한 것은 <개발도상국 맞춤형> 연구질문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 맞춤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은 그 질문에 만족할 수 없고, <진보의 정의>와 같은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토픽의 바다에 빠지게 되겠지만요. 중산층의 진보성/체제 안주 여부라는 질문으로 <번역>되고 타사회에 대한 호기심 혹은 관심으로 연결되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2. 자장 2009/10/15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잠깐 사이에 글이 약간 바뀌었네요. 뭔가 처음 글에 비해 다듬으신 듯한데, 처음 글이 더 멋있었던 듯. <자장님과 같이 보다 심각하게 중국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과 같은 지나치게 외교적인 말씀은 그냥 빼주셔요. 그리고 저는 사실 '중국의 미래'에 대해 크게 궁금해하지는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굉장히 한정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것같아서요.
    <중국에 대한 관심의 경제> 부분은 전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만, 뭔가 잠깐 읽었던 원래 글이 더 제가 답하기 힘든 멋진 이야기가 있었던 듯하니 그 글도 다시 올려주셔요. 번역에 대한 라투르의 주장도 말씀 부탁합니다.
    사실 브루킹스의 저 세미나는 그 수준낮음이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브루킹스의 이런 세미나가 '중국 전문가들' 대상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다른 주제에 대해 듣고(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고 하지만, 글쎄요, 한국에서같으면 신문에도 나지 않을(즉 일반 대중들도 중국에 대해 알 만한) 이야기들을 자랑스레이 하고 있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질문들 자체가 비인간-행위자라는 이야기는 역시, 그냥 '이분법적인 질문이다', '뻔한 질문이다'라는 식의 비판을 넘어서서 다른 지평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같습니다. 감사.

    • arcade 2009/10/15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래 댓글과 지금의 버전이 다른 건 자장님에 대한 <외교적 표현>이 아니라 나오키 사카이의 <번역과 주체>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생각이 안나서 폐기한 부분인데요. 서구의 이론 틀에서의 몇몇 개념들이 일본에 <번역>되면서 그와 연결되는 논의들이 증식하게 된다는 식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중산층이 진보적인가 아닌가"란 사회운동가들의 입장에선 쓸모없는 질문이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어떻게 선동할 것인가를 묻는 이에게 그 호명의 대상이 얼마나 진보적인가 혹은 체제순응적인가를 미리 알아야할 필요도 없고 안다해도 그 지형을 변화시키기 위한 고려대상일 뿐이겠지요. "진보성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이중구속적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에 중산층은 진보적인가/체제순응적인가란 가설적 질문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지젝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유럽지성계는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전 사회주의블록의 morality, 아노미, 대혼란 상태에 대해 엄청난 양의 질문을 쏟아붇느냐고 자문한 후, 그는 시장경제로의 '충격요법'의 효과, 더딘 민주주의화라는 주제 자체가 유럽의 문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단언합니다. 중국의 중산층에 대해 물으며 그것을 진보/보수의 이분법에서 사로잡힌 틀에 박힌 설문에 의지하는 행위자체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은폐하는 <관심의 경제>라는 가설을 세워봄직도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동남아 연구에서 반복되는 부정부패(corruption)에 대한 한심스러운 발표를 들으며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부정부패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것이 아니냐?"라 반문했다가 이상한 놈 취급당한 적도 있었고.

  3. 눈사람 2009/10/15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발도상국 맞춤형 질문...ㅋ
    그런데 <관심의 경제> 또는 <비인간행위자인 (자기 증식적이며, 사람들에게 말하게 만드는) 질문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은 <담론>이라는 문제설정(<담론>의 개념이 열어젖힌 문제지평)과는 어떻게 다른가요?